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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Oct 27. 2021

올해 처음 먹은 토란국

무엇이든 넘치는 것보다는 약간 부족한 것이 낫다

"음, 바로 이 맛이야!" 얼마 전에 올해 수확한 토란을 처음으로 먹었다. 대개는 추석 때가 되면 첫 수확한 토란을 먹곤 했는데, 올해는 추석이 너무 빨라 토란을 캐지 못했다. 해마다 추석 때 먹으려고 토란을 조금씩 캐 보기도 하지만, 추석이 9월인 해에는 때가 이른 탓인지 토란이 크기도 작고 수량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먹고 싶은 유혹을 참고 기다렸는데 과연 10월 중순이 되니 알이 제법 굵어졌다.     

     

토란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저장고가 없으면 일반 가정에서는 토란을 오랫동안 보관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가을에 수확한 토란을 이른 봄까지 먹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아마도 토란이 한 철음식이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토란이 그다지 인기가 있는 채소는 아닌가 보다. 내 주위에서 텃밭에 토란을 심는 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어릴 때부터 토란을 먹어온 탓인지 그 맛에 중독이 되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텃밭 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토란을 심지 않은 적이 없다. 요즘은 장에 가더라도 땅에서 갓 캐어낸 싱싱한 토란을 찾기가 어려운데, 나는 마트에서 파는 마치 표백을 한 것처럼 하얗게 포장된 토란에는 왠지 손이 가지를 않는다. 

토란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

농사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봄만 되면 종자용 토란을 사러 장을 돌아다니곤 했다. 시골에는 아직도 5일장이 서는데 이따금 종자용 토란을 파시는 분들이 계시다. 물론 지금은 수확한 토란 중 일부를 남겨 종자로 쓰기도 한다. 단 5월 초순에 토란 모종을 심으려면 3월 중순에는 모판을 만들고 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 토란은 모종을 만들지 않고 땅에 직접 심어도 되지만, 발아하는데 한 달 반은 족히 걸리므로 생육기간이 짧아져 소출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한 번은 텃밭에 심을 모종들을 사러 갔다가 널려놓은 좌판 한구석에 있는 토란 모종을 발견했다. "어? 토란도 모종을 파네!" 그간 집에서 토란 모종 몇 개 키우자고 날마다 물을 주고 관리를 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토란 모종을 발견하니 횡재한 기분마저 들었다. 

토란 잎은 우산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자란다.

8월이 되자 토란잎이 우산처럼 커졌다. 옛날에는 토란 잎을 우산처럼 쓰기도 했다고 한다. 토란을 45cm 간격으로 심었는데, 잎이 커지자 꽉 찬 느낌이 들었다. 토란은 따로 지지대를 설치해주지 않아도 쓰러지는 법도 없고 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물만 좀 자주 주면 된다.


올해도 비가 자주 와서인지 토란도 무성하게 자랐다. 옆에 심은 가지가 더 크긴 했지만 토란도 질세라 잎을 키웠다. 아마도 토란이나 가지 옆에 키 작은 작물을 심었더라면 햇빛도 받지 못하고 목숨만 겨우 유지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텃밭에 작물을 심을 때에는 키가 비슷한 작물끼리 모아서 심어야 한다.          


토란을 수확하기는 참 쉽다. 엄청나게 자란 토란대를 보면 뿌리도 깊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깊게 뿌리를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낫으로 줄기를 잘라낸 다음 철 포크로 땅을 들썩거려놓으면 쉽게 뽑힌다. 역시나 굵은 토란들이 밑동에 많이 매달려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밑동에 매달린 토란만 보면 영화 에일리언의 징그러운 장면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이제 토란대 끝부분에 매달려있는 토란을 떼어내기만 하면 된다. 토란을 만질 때에는 (특히 토란 껍질을 벗길 때는) 꼭 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다. 맨손으로 만지면 나중에 가려움으로 고생할 수 있다.     

     

토란 세 포기를 심어 수확한 양이다.

토란대는 따로 잘라서 모아놓고, 토란은 토란대로 그늘진 곳에 널어놓았다. 토란은 물기만 좀 마르면 바로 박스에 담아 햇빛이 들지 않는 시원한 곳에 두고, 토란대는 껍질을 벗기고 말려 두었다가 육개장 끓여먹을 때 넣으면 된다. 올해 수확한 토란의 무게를 재어보니 9kg이다. 토란 세 포기를 심어 이 정도 수확했으면 올해도 평년작은 된다. 더구나 올해는 토실토실한 게 알도 굵다. 작년에는 토란을 조금 많이 심었다가 다 먹지 못하고 결국 퇴비장으로 보내버렸지만 올해는 맛있게 먹고 끝낼 수 있는 양이다.     

     

텃밭에 작물별로 심는 양이 얼마 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우리가 소꿉장난하는 줄 안다. "겨우 고만큼 심어서 누구 코에 붙이려고?" 이미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작물을 조금씩 심을 때의 장점도 많다. 양이 적으니 수확할 때도 후딱 일을 끝낼 수 있어 지겹지 않아서 좋고, 먹다 남아서 버리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같은 음식을 지긋지긋하게 먹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온갖 작물들을 골고루 먹을 수도 있는 것은 덤이고.     

     

무엇이든 지나치게 넘치는 것보다는 약간은 부족해야 더 맛있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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