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an 05. 2022

인생은 가늘고 길게

어쩌면 내 팔자가 최고다

그동안 컴퓨터 모니터를 보거나 운전을 할 때면 눈이 좀 침침한 것 같았다. 나이 드니 눈부터 증세가 나타나는가 보다 했다. 그래서 평소에 무시했던 비타민도 먹고, 특별히 눈에 좋다는 루테인까지 챙겨 먹었다. 언제까지 살지는 몰라도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하려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단골 안경점에 찾아갔다. 단골이 좋은 점은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지난 기록을 전부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그곳에서 안경을 처음으로 구입한 게 2009년이라고 하니 나도 참 무던한 단골이었던 것 같다.      

     

"안경을 바꾸신 지 만 2년이 넘었네요. 어르신 같은 경우에는 해마다 안경을 바꾸시는 게 좋아요!" 나처럼 젊어서부터 근시였던 사람은 나이 들며 원시로 바뀌는데, 그 과정에 눈이 오히려 좋아진다고 한다. 이번에도 안경 도수를 두 단계나 낮추었다. 안경을 바꾸고 나니 세상이 달라져 보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직까지 생생한 나에게 어르신이라고? 이 집이 단골 안경점 맞나?


난 나이 먹어서 눈이 침침해진 줄 알았다. 사진 출처 (pixabay)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 웬만한 병은 다 고친다는 지금도, 이따금 뜻하지 않는 지인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바로 몇 달 전까지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평균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꼭 오래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에도 한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토요일 저녁 혼자 집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갔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왔다.  

 

하필이면 심장마비가 나타날 그 시간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구들이 조금만 빨리 발견을 하고 병원에 갈 수 있었으면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늙으면 좋으나 싫으나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 젊었을 때 아내 속 좀 썩인 사람이라면, 더 납작하게 엎드려서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젖은 낙엽'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 아내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이 단순한 말에 모두들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그게 맘대로 되냐?"라는 자조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잘 나간다고 큰소리치던 녀석들조차 어쩌다 보니 모두 다 비슷한 운명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야 시골에서 돈벌이도 못하고 식구들 고생시켰으니까 이렇게 산다 치지만. 

   

항상 함께 있는 것 같은데 따로 있고, 따로 있는 것 같은데 함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장년 부부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위크엔드 인 파리' 중에서)

그동안 잠자코 있던 심리학자들이 갑자기 소리 높여 말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렇게 살아온 우리 세대의 삶의 방식이 잘못된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진즉에 말해줄 것이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이제 와서 어쩌라고? 


그래서 은퇴한 우리 장년의 남자들은 집에서도 왕따로 산다. 짧고 굵게 살겠다던 젊은 시절의 호기는 다 어디 가고, 이제는 가늘고 길게 사는 게 꿈이란다. 단 아프지만 말고!

    

어쩌면 내 팔자가 최고다. 난 그래도 하루 세 끼 아내가 해주는 밥 먹으며, 하루 24시간 아내 옆에 붙어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P.S. 영화 '위크엔드 인 파리' (Weekend in Paris)의 사진을 넣었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은퇴한 장년 부부가 결혼한 지 30주년을 맞이하여, 신혼여행지였던 파리에 가서 다시 시작되는 사랑의 이야기다. 때로는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장년 부부들의 모습을 닮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처럼대화를 많이하는 가족은없을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