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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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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Feb 18. 2022

일 년 내내 딸기를 수확하신다고요?

귀촌일기 중에서

최근에 은퇴를 하신 지인이 찾아오셨다. 소일거리로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1400㎡(약 420평) 구입하셨다고 한다. 시골에서 그 정도 규모의 땅은 찾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잘 구하신 것 같다. 지대가 약간 낮으므로 복토도 하였고, 곧 농막도 설치한다고 하니 농사지을 준비를 거의 끝내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연히 방문한 시설재배 농가에서 그곳의 멋진 시설과 탐스러운 열매에 꽂히셨나 보다. "밭에 200평짜리 시설재배용 이중 비닐하우스를 짓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난방도 할 생각이에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특별히 하시려는 농사가 있는지 물어봤다. "글쎄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딸기나 토마토 수경재배를 해보려고요." 헉! 수막 설치에 수경재배까지? 나도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분야다.

     

최신 설비를 갖춘 스마트 팜 (사진 출처: Pixabay)

내가 모르니 뭐라고 할 말은 없는데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시설재배를 위한 준비가 되신 것 같지도 않은데 비닐하우스부터 짓는다고? 그것도 수경재배 시설까지? 다행히 아직까지 협의 단계라고 하므로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말씀드렸다 (나도 주위에 딸기 시설 재배하시는 분께 들은 얘기다).

    

일단 시설재배는 초기 투자비용이 크다. 이중 비닐하우스 200평 짓는 비용도 적지 않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대형 관정도 파야하고 난방시설과 양액재배 시설도 해야 한다. 시설비 몇 천만 원은 우습게 들어간다.     

더구나 하우스 재배는 일반 노지와 재배법에서 차이가 크다. 하우스 안이 습해서인지 병충해 피해도 많다고 들었다. 작년 봄, 우리 집 비닐하우스에 청경채를 심었는데 진딧물이 하도 많이 생겨서 한 포기도 수확하지 못하고 전부 뽑아버려야 했다. 5월의 날씨에 진딧물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하우스에 특화된 재배 기술부터 배워야 한다.

      

또 비닐하우스 200평이면 아마추어가 하기에는 만만한 농사 규모가 아니다. 실제로 200평짜리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보면 엄청나게 넓다.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어갔으니 과일이든 채소든 소득을 올려야 하는데 초보 시절에는 본전 뽑기도 힘들다. 딸기라고 다 똑같은 딸기가 아니고, 상품성 있는 딸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팔지도 못한다. 돈 못 버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상품성 없는 과일을 잔뜩 껴안고 있으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분은 "그렇지만 일단 비닐하우스를 짓기만 하면 더 이상 돈 들어갈 일도 없고, 언제든지 딸기나 토마토를 따 먹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반박하셨다. "언제든지 딸기나 토마토를 따 먹는다고요?" 

   

사람들은 하우스 안에서는 일 년 열두 달 항상 열매가 열리는 줄 아시나 보다.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딸기의 수확 시기는 대부분 겨울부터 4월까지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를 하면 수확 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재배기간을 늘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일 년 내내 딸기를 따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딸기 시설재배 모습 (사진출처: pixabay)

물론 바람 쌩쌩 부는 추운 겨울날, 따뜻한 비닐하우스에서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먹을 수 있다는 게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난방비부터 시작해서 감당해야 할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다.

     

은퇴 초기에는 하루빨리 남들처럼 농사짓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나 취미로 하는 농사가 아니라면, 먼저 투자 대비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경제성부터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처음 농사짓는 분들은 투자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설사 실수를 해도 크게 망가질 것도 없는 노지에서 먼저 농사경험을 쌓는 게 더욱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 집처럼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놓고 시험 삼아 하우스 재배를 해 보시든가.

    

방부목으로 지은 우리 집 비닐하우스. 공사 완료 직후 사진.

그 지인은 비닐하우스 200평 짓는 것을 보류하시기로 했다. 그나마 일을 벌이기 전에 계획을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노지재배를 해 보시겠다고 하니, 첫 농사에서 풍성한 과일과 채소를 수확하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세상 일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농사는 절대로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 마음이 급하다고 농작물이 빨리 자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귀촌 초기에는 충분히 준비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 땀을 흘리며 노력할 줄도, 느긋하게 결실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어차피 한두 해 농사짓고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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