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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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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Feb 24. 2022

시골 인심이란 나 하기 나름이다

귀촌일기 중에서

과수원에서 전지작업을 하고 있는데 트랙터를 실은 커다란 트럭이 나타났다. 올해 10만㎡ (3만 평)는 되는 우리 집 앞 언덕에 고구마를 심는다는 소문이 들리더니만, 마침내 그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트럭에서 중년의 낯선 남자가 내리더니만 짐짓 반가운 체 인사를 한다. 내가 누군가? 내가 바로 외지인들이 그 무서워한다는 토박이가 아닌가! 그는 내가 이곳에 눌러앉은 지 15년 된 외지인이란 것을 알 턱이 없다.   

  

고구마 농사짓는다고 이곳저곳 다니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테니, 마음 편히 농사 지으려면 밭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집과는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을 터였다. 대규모로 농사지으려면 수십 명씩 일꾼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자칫하면 마을 주민들과 사소한 문제로 마찰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현지인의 입장에서도 외지인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집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사라지기도 한다. 또 우리 집 가까이 언덕에서 자라는 두릅은 한 번도 우리 차례가 된 적이 없다. 그러니 마을 주민 입장에서는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반갑기는커녕 자신도 모르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우리 집 앞 언덕의 고구마 밭. 

나도 엉거주춤 인사를 받으며 물어봤다. "벌써 밭을 갈아주시게요?" "아뇨, 밭에 돌이 많아 돌부터 골라내려고 왔어요." 내가 이곳에 꽤 오래 살아왔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며 한마디 했다. "한 15년쯤 됐나? 예전에 그 밭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흙이 마사토라 고구마 농사 잘 됐다고 했어요." "아! 다행이네요. 흙이 좋아 보이긴 했어요."  


처음 만난 사이지만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고구마는 마사토에 진흙이 약간 섞여 있는 게 좋아요. 그래야 고구마 색이 예뻐지거든요." 어라? 고구마 색상까지 따지는 사람은 처음 봤다. 전문가 티가 좀 나는 것 같다. 내가 지난 15년간 그 밭에 무엇을 심었고 작황이 어땠는지 줄줄 꿰고 있는 터줏대감이라면, 그는 고구마 농사에 관한 한 전문가인 것 같다. 

    

텃밭에 심은 고구마. 지금은 자급용 고구마만 심는다.

예전에 고구마 농사지어 겨우 본전을 건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궁금해서 물어봤다. "고구마 심어서 돈은 돼요?" "작년에는 고구마 값이 좋아서 그나마 괜찮았어요. 그래도 품값이 너무 올라서 예전만 못해요. 더구나 요즘은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기도 힘들고요." 세상에 쉬운 농사란 없나 보다. 

    

내가 귀촌한 첫 해에 600여 평의 밭에 호박 고구마를 심었는데 비용을 빼고 나니 딱 41만 원 남았었다. 우리 부부의 인건비나 일 년간 밭에 오가며 들어간 교통비는 아예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물론 우리 부부가 능숙하게 일을 하지 못해 인건비와 경비가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농촌의 실정을 알았다. 

     

그 당시는 다른 판로도 없었으므로 남들처럼 경매로 고구마를 넘겼는데, 내가 받은 금액보다 유통과정에 들어간 비용이 더 컸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재배한 농작물을 경매로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지만, 남을 것 같으면 차라리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이제야 고백하건대 몇몇 지인들에게는 농산물을 강제로 떠넘기기도 했다.   

   

어쩌면 나처럼 소규모로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가 유일한 대안인지도 모르겠다.    

트랙터가 밭을 갈아주는 모습 (사진출처: Pixabay)

내 고구마 농사 이야기에 그는 한참을 웃고는 "고구마는 대규모로 농사지어야 먹고살 수 있어요"라고 한다. 그는 올해 고구마 농사지으려고 여기저기에 빌린 땅이 20만 평이나 되고, 집에는 커다란 저장용 창고와 고구마 세척기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한참 동안이나 대화를 나눈 뒤에 그는 일을 하러 언덕 위로 올라갔다. ‘젊은 사람이 인상도 서글서글하니 열심히도 사네!’ 그러니 앞으로 웬만한 불편쯤은 참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물이 필요하다면 과수원에 있는 지하수도 쓰라고 해주고.  

    

어쩌면 그의 털털한 성격에 내 경계심이 누그러진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함께 농사짓는 처지에 나부터라도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올해는 그가 마음 편히 농사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만약 그가 나를 소 닭 보듯 지나치고 크고 작은 불편을 끼치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면, 아마도 나 역시 씩씩거리며 따지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여느 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시골 인심이란 것도 어쩌면 나 하기 나름인지도 모른다. 


<대문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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