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귀촌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Mar 04. 2022

체리 묘목을 구입했다

귀촌일기 중에서

사과나무를 일부 베어냈다. 농사를 접으려는 게 아니라 더 잘해보려고! 우리 집 사과나무는 왜성대목 (키가 작게 자라는 특성을 지닌 나무)에 후지사과를 접목한 품종으로 심은 지 14년이 지났다. 왜성대목의 특성이 살아있으려면 나무의 접목 부위가 땅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며 접목 부위가 저절로 땅속에 묻혀버렸다. 그러자 사과나무가 본색을 드러내고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사과나무의 세력(힘)이 좋으면 가지만 무성 해지며 사과 색깔도 잘 나지 않는다. 그동안 나무의 힘을 빼려고 내가 배운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사과 전문가인 형님이 보다 못해 말씀하셨다. "우리 집 나무도 이랬는데 어떻게 좀 해보려 해도 별 효과가 없더라. 죽어라 고생만 했어. 한두 해 농사짓고 말 게 아니라면 차라리 베어내고 새로 심는 게 나아!"  

   

그동안 나무가 커서 사다리 위에서 일하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이제는 나무를 새로 심으면 잘 키울 자신도 있으니 아무래도 순차적으로 나무를 교체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한두 해 농사짓고 그만두기는 다 틀려버린 것 같으니까. 그래서 사과나무를 일부 베어냈는데 아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서 묘목을 새로 심으면 도대체 언제까지 농사를 지으려고? 아이고 내 팔자야!”     

사과나무를 일부 베어낸 과수원의 모습

그간 코로나로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더니 모두들 지쳐있었다. 평소에도 정부 시책에 말 잘 듣는 모범시민이긴 했지만, 코로나 터지고부터는 집에 있으라는 말에 정말 집에만 있었다. 사람 산다는 게 때로는 서로 만나서 수다도 떨고 해야 하는데, 일 년 넘게 부부가 집에 갇혀 지내려니 사이가 좋았던 부부라도 원수가 될 것 같다.      

"형님, 사과 묘목도 사고 바람도 쐴 겸해서 옥천 묘목단지에 가지 않으실래요?" 사과 전지도 끝났으니 지금은 잠시 여유가 있을 시기이기도 하다. 나의 제안에 아내 분들이 난리 났다. 아내는 아침부터 신이 나서 흥얼거리며 돌아다녔다. 평소에 집돌이로 소문난 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이니 사교성 좋은 아내 분들은 오죽했으랴 싶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지금 정부의 시책에 어긋난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니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사과 묘목을 사러 가는 거니까! 

    

옥천에 전국 최대 규모의 묘목시장이 있다고 하더니만 과연 엄청나게 많은 묘목 상들이 보였다. 시골 산지 15년째니 제법 많은 나무 이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나무들이 더 많았다. 묘목들을 둘러보다가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앗, 체리다!"     

빨갛게 익은 체리 (출처: Pixabay)

예전부터 아내는 체리를 심자고 줄곧 졸라왔다. 지인으로부터 체리를 한 번 얻어먹고는 아내는 완전히 체리 마니아가 되었다. 체리가 열리는 6월 말에는 딱히 먹을 만한 과일이 없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6월 말에 먹으려고 심었던 백살구는 개살구로 판명이 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먹어보지도 못했다. 

    

물론 체리를 지금까지 한 번도 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귀촌 초기에 체리를 심었는데 첫겨울을 보내며 얼어 죽었다. 또 아내의 극성에 이따금 온라인으로 농원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추위에도 강하고 키도 크게 자라지 않는 왜성 체리는 이미 전부 품절된 상태였다. “이것 봐. 전부 품절이라잖아!”  

    

그동안 내가 체리 묘목을 찾는데 좀 미적거리기는 했는데, 그 이유는 체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심을 곳도 마땅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과수원에 알뜰하게도 유실수들이 심겨 있으니 체리를 심으려면 어떤 나무든 대신 뽑아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 손으로 10년 이상 묵은 나무를 캐낼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그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버텨왔는데 마침내 아내가 체리 나무를 찾아낸 것이다.   

  

“체리는 추위에 약하다니까! 예전에 심었을 때도 죽었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묘목 상 주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추위에 강한 체리도 있어요!" 어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왜성 대목에 접목한 체리도 있어요?” “그럼요, 콜트 대목에 접붙인 게 있어요.” 묘목상 주인은 어떻게든 체리 묘목을 팔아먹으려는 것 같았다.  

    

"체리는 한 그루 심으면 수정이 잘 안 된다면서요?" "아! 걱정 마세요. '라핀(Rapins)'이라고 자가 수정이 잘 되는 체리도 있어요!" 순간 아내가 나를 째려봤다. 저분께서 별 핑계를 다 대시네! (이것은 공개용 언어임)     

결국 잘려나간 우리 집 개살구. 봄이면 꽃만 예쁘게 피었다.

더 이상 묘목상 주인과는 말해봤자 밑천도 못 찾을 것 같고, 도대체 어디에다 체리를 심으라는 거지? 이번에는 아내가 자리까지 지정해 주었다. "먹지도 못하는 살구나무 뽑아 버리면 되잖아!" “세상에! 그 큰 살구나무를 어떻게 뽑아내?” 그때 말없이 옆에서 딴청을 피우던 형님이 눈치도 없이 말씀하셨다. “그건 내가 뽑아 줄게!” 아! 내편은 아무도 없다.  

   

아내는 득의에 가득 찬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체리 묘목 파는 곳이 없다며?”


<대문사진: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 인심이란 나 하기 나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