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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에 칼을 갈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간다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먼저 공구를 사용하기 편하도록 늘어놓고,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손끝에 전해오는 일정한 압력을 느끼며 세심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절대로 급해서는 안된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반복해야 한다.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와이프가 주문한 부엌칼을 갈고 있는 중이다.

기껏해야 부엌칼을 갈면서, 마치 허접한 아마추어는 아닌 것처럼 프로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다. 칼을 소주병이나 항아리 뚜껑에 쓱쓱 몇 번 문지르고 써도 되지만, 그건 아마추어나 할 짓이다. 또 요즘엔 사용하기 편리한 칼갈이도 있지만, 그것도 전문가용은 아니다. 전문가는 숫돌에 칼을 갈아야 한다.


예전에는 아버님께서 칼을 갈아주셨다. 우리 집 칼뿐만이 아니라 친척들 칼도 갈아 주셨다. 그래서 친척들이 우리 집에 올 때면, 무뎌진 칼을 몇 개씩 들고 오곤 했다. 그러면 아버님께서는 기쁜 얼굴로 몇 시간이고 칼을 가셨다. 분명히 본인만이 잘하실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칼 가는 내내 행복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갈아주신 칼은 몇 달을 써도 쉽게 날이 무뎌지지를 않았다.

내가 칼 가는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목공용 끌을 갈면서부터였다. 또 누군가는 아버님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또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 사이 나도 칼 가는 기술이 제법 늘은 것 같다.


20180928_154815 브런치.jpg 내가 사용하는 숫돌들과 (좌) 아버님께서 사용하시던 숫돌들 (우). 쪼그리고 앉아 칼을 갈기가 힘들어 작업대에서 칼을 간다.


칼을 가는 방법은 단순하다. 부엌칼은 약 15도 정도로 칼을 눕히고, 이 각도를 유지한 채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다. 숫돌의 한 부분만 파이지 않도록 숫돌 전체면을 사용하여 골고루 갈아준다. 칼등이 몸 쪽을 향하고 있을 때에는 당길 때 힘을 주고, 반대일 때에는 밀 때 힘을 준다. 사실 비법은 이게 전부다. 그런데 이론은 쉬워도, 익숙해지려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칼을 갈을 때에는 처음에는 거친 숫돌에 갈다가, 차츰 고운 숫돌로 옮겨간다. 처음에는 거친 숫돌 250번을 사용하다가, 800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고운 4000번을 사용한다. 날이 많이 무뎌지지 않으면 250번은 생략한다. 내가 하는 방법만 본다면 나도 단연코 프로다.


예전에 아버님이 쓰시던 숫돌은 거친 숫돌과 고운 숫돌 두 개만 남아있는데, 얼마나 오래 쓰셨으면 절반은 닳아 가운데가 움푹 패어있다. 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품질의 숫돌로, 그렇게 무딘 칼날을 날카롭게 만드시곤 했다. 내 칼 가는 솜씨가 아버님만큼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매번 칼을 갈 때면 숫돌에 칼이 쓱쓱 지나가는, 약간은 날카롭고도 매끈한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젊어서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나이 들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고 하더니만, 이제야 나도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칼 갈아달라는 아내의 주문에, 나는 오늘도 정신을 집중하며 칼을 갈고 있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가나 보다.


아마도 식구들은 칼을 갈고 있는 내 모습 속에서 예전의 아버님을 발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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