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꿈꾸며 캐나다에 온 지 이 년쯤 됐을 무렵, 닭과 칠면조를 가공하는 가금류 공장에 취직했다. 캐나다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닭털을 들이마시며 일할 줄 몰랐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시간에 쫓기며 기계를 고치고 있었다. 매일 밤, 컴컴한 어둠 속을 운전해 출근했고 해가 뜨기 전 퇴근 했다.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다. 일곱 빛깔 무지개를 꿈꾸며 캐나다에 왔지만 어느덧 어둠 속을 헤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영주권만 따면 이 지긋지긋한 놈의 공장을 당장에 그만둬 버리겠다며 이를 갈았다. 문제는 영주권 취득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관련 법은 매년 바뀌고 또 바뀌었다. 내가 영주권을 신청하려 했을 때는 전에는 필요 없었던 영어 점수 서류가 추가되기까지 했다.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만큼 나의 부정성도 커져만 갔다. 영주권을 손에 넣는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최대한 빨리 영어 시험을 볼 수 있는 날짜는 그 주 토요일이었다. 외국인 신분이라 신용카드가 없던 나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불쌍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삥을 뜯다 시피 카드 번호를 물어봤다. 마음씨 고운 친구 덕에 시험비를 무사히 결제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야간조로 일하는 탓에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 근무가 토요일 아침이 돼서야 끝나는 것이었다. 시험은 그로부터 네 시간 뒤인 오전 열한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잠자기도 애매하고 기다리기도 거시기했다. 고민 끝에 조금이라도 자는 쪽을 택했다. 결전의 날,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쪽잠을 청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멍청하게 처자다가 못 일어나면 어쩌지?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렵진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불안케 했다. 결국, 내내 뒤척이기만 하다가 시험장에 갔다.
영어 시험은 깊은 사고력을 요구했다. 내가 몽롱한 상태인 걸 알기라도 하는 듯,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체크하는 날카로운 문제가 계속 이어져 날 괴롭혔다. 집중력은 자꾸만 떨어졌고 시험을 망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또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지문 하나하나를 힘겹게 읽으며 마지막 문제에 겨우 다다랐을 때 짧은 탄식이 나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학 지문에 생전 처음 보는 단어까지 나오다니. ‘Moonbow? 이게 대체 캐나다 이민하고 뭔 상관이야?’ 식은땀이 다 났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문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이러했다. Rainbow가 햇빛에 반사돼 생기는 무지개라면 Moonbow는 달빛에 반사돼 생기는 달 무지개라고. 공기가 머금고 있던 수분에 달빛이 반사돼 밤에도 무지개를 볼 수 있다고. 매우 드문 자연 현상이라 쉽게 볼 순 없지만 아프리카 잠비아의 빅토리아 호수에 가면 그 황홀한 광경을 볼 수 있다고. 순간, 고요한 어둠 속 호숫가에 홀로 서서 Moonbow를 바라보고 있다는 환상에 휩싸였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점수가 잘 나와 이민서류를 무사히 접수할 수 있었고 그토록 바라던 영주권자가 됐다. 그렇다고 내 삶이 극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닭 내장 속을 수영하며 기계를 고치던 정비공에서 책상에 앉아 일하는 회사원이 됐으니 겉보기에는 달라져도 한참 달라지기야 했지만, 매일같이 쏟아지는 서류의 홍수 속에서 어푸어푸 헤엄치며 살고 있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숨 가쁘기는 마찬가지다. 내 삶의 시간은 환한 낮일까? 아니면 아직 어두운 밤일까? 아무래도 어둠에 가까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예전처럼 부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도 무지개가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잠비아로 떠날 것이다. 그날 밤은 칠흑처럼 어두웠으면 한다.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찬란하게 빛난다는 Moonbow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행운이 내게도 주어진다면. 그 희망의 빛을 두 눈 가득 담아 두었다가 사는 일이 버거울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꺼내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