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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ㅐ즈애플 Jun 12. 2021

전환점에 대한 이해

스무 살에 나는 불륜 커플이 자주 오는 술집에서 일했다. 아줌마 아저씨는 자리마다 쳐져 있는 칸막이에 숨어 은밀한 스킨십을 즐겼다. 아저씨는 애인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선지 내가 술을 가져갈 때 조금만 싹싹하게 굴어도 후하게 팁을 주곤 했다. 사장님도 열심히 일한다며 월급 외의 용돈을 자주 얹어 줬다. 저녁때마다 주방 이모가 밥도 잘 차려줘 밥값 들 일도 없었다. 밤에 하는 일이라는 점 빼놓고는 모든 게 좋았다. 사장님은 나에게 가게를 완전히 도맡을 생각 없냐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인도로 배낭여행을 갈 경비를 마련하려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편한 일을 두고 굳이 인도까지 가서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금 아니면 배낭여행을 갈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여행하고 온다고 없어질 술집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던 이 순간은 점점 희미해질 것만 같았다. 결국, 사놓고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가이드북을 손에 쥔 채 인도 뭄바이 행 비행기를 탔다. 운이 좋았는지 옆자리에는 인도인이 앉아 있었다. 조심스럽게 “excuse me” 하고 말을 걸었다. 지도로 봤을 때 뭄바이와 비교적 가까워 보이는 뿌네라는 지역을 가리키며 어떤 곳인지 물었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very very good!” 그냥 good도 아니고 very very good이라니 그럼 꼭 가봐야 하는 곳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뿌네를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은 굉장히 혼잡했다. 거기에다 역무원의 알아듣기 힘든 영어는 나를 더 정신없게 만들었다. 일단 제일 싼 티켓을 달라고 했다. 역무원은 씨익 웃으며 티켓을 내밀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내가 탄 기차 칸은 불가촉천민, 닭, 오리 따위가 한 데 섞인 구역이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찜통 같은 기차 안에서 닭, 오리와 4시간을 쪄지며 뿌네에 도착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뿌네에는 딱히 이렇다 할 유적지도, 관광지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냥 시골 마을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영어에서 very very good은 어쩌면 쥐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밤이라 일단 숙소부터 찾아야 했다. 다행히 가이드 북에 다양한 숙소가 추천돼 있었다. 구글 길 찾기가 없던 그 시절,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가이드 북에 있는 지도를 보여주며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No problem!”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을 헤매며 빙글빙글 돌다 걸어갈 수 없는 거리라는 걸 깨달았다. 퍽퍽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울며불며 허름한 여인숙에 겨우 도착했다. 주인에게 뜨거운 물이 나오냐고 물어봤더니 이번에도 “No problem!” 바로 짐을 풀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아래 섰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찬물로 샤워하고 밤새 벌벌 떨며 잠을 잤다. 또다시 깨달았다. No problem이라는 건 사실 Big problem일지도 모른다는 걸.


어리숙한 나의 인도 여행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여행이 계속될수록 그런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물어 들은 것과 직접 본 것의 차이는 너무도 크고 강렬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에메랄드를 삼킨 바다가 있다고 들으면 기차 타고 이틀을 달려갔다.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아 실망했지만 기차 안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사람들이 내게는 에메랄드 보다 더 맑은 초록이었으니 괜찮았다. 북유럽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주변 사람 모두가 살인적 물가를 들먹이며 나를 말렸다. 돈을 아끼려고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느라 너무나 고생스러웠지만 북유럽의 청량함을 기억 속에 담았으니 괜찮았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온갖 고생 되풀이하기를 수백 번, 인도에서 시작된 부딪힘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름대로 very very good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인생도 No problem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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