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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진 Dec 10. 2020

'Other Life'와 새로운 시작, 재즈보컬 김영미

재즈에비뉴 언택트 인터뷰 #4

언택트 인터뷰는 메신저, 화상대화 등 직접 마주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하는 텍스트 콘텐츠입니다. 생동감은 조금 덜할 수 있지만 다양하고 개성 있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 김영미 (1988년 4월생)

- Other Life <Other Life> (2019)

- Other Life 정규 1집 <Reality> (2020)

- 수원여자대학, 예원예술대학 졸업




자연스러운

음악 성장기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노래를 부르는 김영미입니다. '김옐' 이라는 예명으로 가요 피처링을 2016년부터 간간히 해왔었는데, 2019년 11월에 재즈밴드 아더 라이프(Other Life) 로 앨범을 발매하면서 재즈보컬로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네요.



어떤 음악적인 성장기를 거쳐오셨나요?


성악을 전공하셨던 엄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늘 틀어두셨던 라디오에서는 클래식과 국악이 주로 나왔고, 어릴때부터 저의 음악 활동도 많이 지지해주셨죠. 초등학생 시절에는 사물놀이와 합창단 활동을 내내 했어요. 유행을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도 했죠. 5년정도 배웠지만 크게 좋은 실력을 가지지는 못했어요. 체르니 한 번 치고 사과 두 번 동그라미하고, 다들 그러지 않았나요? (호호)


중학교때는 암흑의 경로(?)를 통해 리스너로 자라납니다. 취향은 늘 마이너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대중가요보다는 인디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고, 월드뮤직(지금은 이렇게 불리지 않는다죠?)에도 관심이 많았던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럼 음악을 하는게 꿈이였나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큰 변화가 있었어요. 인문계 학교였는데, 음악을 전공하신 교감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음악활동을 많이 장려하셨어요. 중창단, 가야금부, 민요부를 거치면서 대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대회를 준비하면서 민요부를 맡으셨던 선생님이 저에게 입시를 권하셨고 2학년때부터 대학 진학을 위한 국악 공부에 돌입했어요.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 저에겐 국악이 익숙했어요. 노래도 곧잘 해서 즐겁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악을 하고 있진 않으시네요.


열심히 하긴 했는데, 인문계고 학생이 국악고나 예고 친구들과 경쟁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많았어요.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죠. 늘 겉도는 존재 같았고 가야 할 길도 굉장히 좁아보였구요. 그래서 3학년때 실용음악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나름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배워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보컬로 입시를 하기 위해서는 가요를 꼭 해야 했는데, 저는 대중가요는 잘 듣지 않았잖아요. 잘 듣지 않았던 음악은 역시 잘 안되더라구요.


재수를 하던 와중에 학교를 다니던 동갑내기 친구가 학원에 놀러와 재즈보컬이라는게 있다는 걸 알려주었어요. 가요가 싫어서 도피처 삼아 종종 불러보았는데 이거다 싶었죠. 의외로 제가 배웠던 민요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이후 학교에 들어가서 재즈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죠.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계속 공부를 했더니 이렇게까지 와버렸어요. 벌써 십 년이 넘었네요. 너무 많이 왔어요, 껄껄.



그럼 재즈는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처음 시작할 때에는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 를 교과서처럼 들었어요. 엘라의 노래를 통해 헤드를 대하는 정직한 태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죠. 또한 싱어에서 머무르지 않고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즉흥연주 실력을 갖춰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어준 것도 그녀의 노래를 통해서였어요.



현재의 음악적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보통 재즈보컬하면 허스키하고 걸걸한 목소리에 파워풀한 보이스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저는 하이톤에 클린한 보이스에 가까워요. 이런 목소리로도 재즈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강한 스윙감과 즉흥연주도 제가 많이 신경쓰는 부분이구요. 릴렉스한 발성도 제 성격을 나타내주는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오.. 굉장히 디테일하게 짚어내시네요 !


음악가로써 자신을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서는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가 없죠. 중심이 세워져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주변에 휘둘리기 쉬워지는 것 같아요. 나 자신에 대해 깊게 탐구하고 내적으로 더 뻗어나가다보면 자신의 것이 확고해지고 진정한 본인의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가지 강조할 점은 기본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구요. 음악에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지점을 넘어서야 그 다음으로 갈 수 있는데, 성급하게 앞선 단계를 가려고 하다보면 결국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더라구요.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


 


음악이 있어

행복했던 순간



여러 무대에서 노래하실텐데, 어떤 때에 가장 즐거움을 느끼세요?


가끔 스윙댄스를 추시는 분들이 밴드와 함께 하는 이벤트가 있어요. 제 노래에 맞춰서 즐겁게 춤을 추는 분들을 볼 때면 늘 기분이 좋아지죠. 가장 보람찬 순간인 것 같아요.


2018년도에 워킹홀리데이로 리스본 생활을 하던 때도 기억에 남아요. 사실 큰 계기가 있어서 포르투갈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그때에 제가 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먼 곳이어서 선택했어요. 물론 준비도 충분히 되지 않았고, 일도 구하지 않고서 백수로 열심히 지냈습니다. 그와중에도 노래하는 친구를 따라 잼데이에 종종 갔었는데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음악 안에서는 즐겁게 연주가 되더라구요. 단지 보컬로서가 아니라 솔로를 같이 하는 연주자로 참여하며 서로의 언어를 느끼는 게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시절 직접 찍은 필름 사진



재즈밴드 '아더 라이프' 도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어요. 어떻게 결성하게 되셨나요?


저를 제외한 두 멤버(피아노 박힘찬, 기타 안상준)는 네덜란드 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힘찬과 영미가 만나게 되었고, 힘찬이 제대한 후 2019년 초부터 서정적인 유럽 사운드의 보컬 프로젝트 <힘찬X영미>를 시작했죠. 그해 중순에 상준을 소개받아 모던한 사운드에 박차를 가하며 'Other Life' 가 결성되었어요(영상 : Other Life - Deep Blue Lake).


셋을 보면 비슷한 무드가 나요. 결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모두들 재즈에 관해서 본인들의 시각이 분명히 있는 훌륭한 연주자인데 각자의 개성을 모았을 때 생기는 시너지가 흥미롭고 즐거워서 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서로를 좋아하는 것도 팀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이지 않았나 싶어요.



팀 사운드는 어떻게 만들어가세요?


처음에는 서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연주를 했는데, 자작곡을 연주하면서는 락을 베이스로 한 컨템포러리 재즈 쪽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클럽 연주중에 자작곡을 내보일때면 관객의 반응도 의식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듣는 분들도 즐거워야 저희도 좋은 에너지를 내게 되니까요. 



정규 앨범 작업이라는 것은 어떤가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웠을거 같은데


이번 정규앨범 녹음 당시 춘천 상상마당 스튜디오를 하루 빌려서 진행했어요. 사실 7곡을 연주와 보컬까지 녹음하는건 무리한 일인데 금방 끝날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었죠. 전날 합주도 잘 나오고 좋았거든요. 그런데 두 곡 녹음하는데 거의 반나절을 쓰고는 정신이 반쯤 나가버렸어요. 결국 악기 녹음만 부랴부랴 마쳤고, 저는 아무것도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녹음이 끝나면 피곤할 것 같아서 단체 숙소까지 잡아뒀는데 하필 2월 말에 춘천에서 코로나가 도는 중이어서 저와 힘찬만 빼고 다들 가버렸죠. 저희는 숙소가 아까워서 남겠다고 했는데 급하게 마무리한 연주가 아쉬워서 기분이 상한 힘찬과 녹음도 제대로 못한 제가 넓은 숙소에 덩그러니 둘만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맥주만 들이키고 분노에 차서 잠이 들었죠.


다음날 점심 춘천에 온 김에 막국수나 먹고 가자 싶어서 식당에 들렀는데, 젓가락 봉투에 <잠언 29:23 -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가 떡하니 쓰여있는 걸 보고 박장대소하며 이미 끝난 걸 어쩌겠나 싶었어요. 보컬은 일주일 후에 다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고 작업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실 막국수는 크게 맛이 없었지만 큰 깨달음을 주었던 가게였어요.


 외에도 코로나 동선에 겹친 멤버들의 검진으로인해 앨범 발매 공연을 미뤘다던지, 음원 발매 일정이 공연 이후에 나올 뻔해서 조정을 하느라 진땀을 뺐었다던지, 제가 직접 제작한 CD 디자인이 잘못 나와서 공연 날까지 맞추지 못할 뻔했다던지. 정말  하나 순조롭게 진행된 일이 없었네요. 처음 하는  투성이어서 굉장히 고단했지만 즐겁게 작업했어요 !




창작자들은

계속 움직입니다



하하, 밴드가 가지고 있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최근에는 2집을 구상하고 있어요. 1집때는 주변환경을 묘사했다면 이번에는 내면을 담고 싶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레 제 안의 어두운 면들을 마주하게 되더라구요. 언택트 시대에서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음악을 들려드릴 순 없지만 창작활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 하려고 해요. 창작자들은 자신의 말을 내뱉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잖아요. 



유독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을 한 해였을텐데,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


공연을 할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판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아니스트 김계선씨와 소소하게 '김자매 스튜디오' 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어요(영상). 구독자와 조회수가 느는 재미에 열심히 하고있죠. 지금은 둘이서 소소하게 음악채널로 운영하고 있지만, 채널이 더 커지면 예술 창작 분야에 계신 여성 능력자 분들을 모셔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경력단절이나 유리천장에 막혀있는 여성분들을 모셔오는 것 까지가 저희의 목표랍니다 !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김자매 스튜디오 ! (놀랍게도 친자매는 아닙니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원래 독일 대학원을 지원하려고 구상하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해외에 나가는게 쉽지 않게 되면서 유학 계획을 접었어요. 안타깝지만 이제는 좀 더 제 안에 있는 국악적인 요소들과 재즈를 결합해서 구체화시키려고 해요. 그래서인지 ECM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있고..


그리고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자켓 디자인을 제가 해봤는데, 눈에 즉각적으로 보이는 디자인 작업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어요. 시각디자인과 영상 쪽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터라, 공연 기획부터 제작까지 제 힘으로 스스로 해내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다음번 프로젝트를 실행할 때에는 이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글 김효진


예술가의 영혼을 살찌우는 콘텐츠 제작소 재즈에비뉴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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