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먼저 올립니다!
자살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자살의 연구』라는 책이다. 매일 같이 죽음을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한다. 사실 최근에는 죽음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상속 포기와 한정 승인의 존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상속 포기는 말 그대로 고인의 재산과 상속 채무를 포기하는 것이고 한정 승인은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안에서 상속 채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덕분에 죽음이 덜 겁났다. 누구에게든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려나. 근데 내 책과 앨범들과…. 그 많은 것들은 어떡하지.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죽음이 번거로운 일이라고 느끼는 건 아직 살 만해서 그럴 거다.
『자살의 연구』를 처음 번역한 최승자 시인에 대한 논문을 썼었다. 『연인들』을 기점 삼아 시인의 시편들을 두루 살피는 내용이었는데, 그의 어떤 시들은 꼭 살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죽음과 쓸쓸함에서 출발한 시인이 오랜 시간 끝에 결국 삶과 죽음을 나란히 두고 보게 됐고, 거기엔 긍정도 끝없는 부정도 아닌 묵묵한 열기 같은 게 느껴졌다. 난 일관성보다 자기도 모르게 흐른 시간과 그로 인해 변한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그 일은 늘 사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적절히 후회할 줄도 알고 끝내 받아들일 줄도 안다.
『연인들』에서 최승자 시인은 『내 무덤, 푸르고』 이후 5년간의 공백을 “한 여행을 시작하여 그 여행을 마치고서 이제 비로소 한 입구, 다른 한 출발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기에 가까웠던 시 쓰기를, 그럼에도 쓰인 시들을 통해 자신만 알 수 있는 변화를 감각했다. 그리고 그 5년을 ‘죽음’의 죽음이라고 갈음했다. 이 죽음은 한 개인에게 얼마나 선명한 것일까. 그것은 어쩌다가 시로 쓰여 이토록 사람들이 삶의 불확실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까. 어떤 음악들도 이와 같은 도움을 준다.
빌 에반스의 삶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린 자살’이라는 뼈아픈 비유가 덧붙여진 이유는 이제 많이들 알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깊은 배음을 만들었던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의 사고로 인한 죽음과 빌 에반스가 조카를 위해 쓴 곡 ‘Waltz For Debby'에서 데비의 아버지였던 형 해리 에반스의 자살, 그리고 연인이었던 엘레인 슐츠의 투신자살. 그에게는 죽음의 그늘과 죄책감이 늘 따라다녔다. 그런 빌 에반스가 1980년 9월에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2월 발매된 트리오 앨범 [You Must Believe in Spring]은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과 삶에 접붙어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겹친 모습을 띤다.
앨범에 수록된 ‘B Minor Waltz’는 엘레인에 대한 헌정을, ‘We Will Meet Again’은 형 해리를 위한 곡이었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트랙은 영화이자 TV 시리즈로도 제작된 ⟪M*A*S*H⟫의 주제가 ’Suicide is Painless'다. ⟪M*A*S*H⟫는 한국전쟁 당시 이동 육군 외과 병원에 주둔한 이들을 다룬 블랙 코미디인데, 이 곡 역시 그런 풍자적인 기조에서 비롯한 사운드트랙이다. 빌 에반스의 공연 레퍼토리에 자주 등장한 ‘Suicide is Painless’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녹음한 앨범 [Consecration: The Final Recordings part 2]에도 수록되어 있다. 고통 없는 자살. 덫 같은 죽음을 삶으로 흡수해서 음악에 녹이는 방법을 빌 에반스는 끝에 끝까지 연습했다.
엄마는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몇 년의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의 짐을 정리하는데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시간의 더께는 완고해서 쉽게 닦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가져온 할아버지의 옷들을 물려받아 입고 다닌다. 요즘 만들어지는 옷과는 태가 묘하게 다르다. 세월 속에서도 견고하게 살아남은 옷답다. 죽음은 사라지면서 뭔가를 남긴다. 진짜 죽는 건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일 테고…. 나는 ‘잘’ 죽은 이들이 남긴 시간들 속에서 살고 있다. 잘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