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를 보러 온 날은 꽤 추웠다. 나는 그날 문화역서울284에서 <재즈 살롱>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두 주에 걸쳐 수요일에는 워크숍,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하루에 2회씩 공연이 있었다. 난 모든 회차의 스크립트 작성과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프로그램의 첫 회차였던 그날은 재즈피플 류희성 기자님과 함께 재즈 스탠더드와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자작곡을 고루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어쩐지 진행하는 내내 얼굴이 평소보다 더 달아올랐다. 그날 들은 음악은 꽤 다양했다. 스탄 게츠와 케니 배런, 엔리코 피에라눈지, 선스 오브 케멧 등. 엄마가 어떻게 들을지는 제대로 신경 쓰지도 못했다. 그저 진행할 내용과 참여자들의 반응에 모든 감각이 쏠려있었다. 프로그램 취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고 특정 곡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는 참여자나 오히려 그 곡이 정말 좋았다고 소감을 나누는 참여자도 있었다.
붕 뜬 마음으로 프로그램이 끝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얼추 인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머쓱하게 엄마와도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평소에는 능글맞기도 한데 왜 이럴 때는 늘 어색하고 어려운지. 사진을 찍어주던 분이 핀잔을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랑 안 친하시냐고. 좀 더 붙으라고. 엄마는 눈치를 살피다가 내가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해 보였는지 먼저 자리를 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역으로 향했다. 엇갈릴 뻔한 귀갓길에 엄마를 다시 만났고 열차에 나란히 앉았다. 별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약간은 겉도는 이야기들. 그러다가 엄마에게 어떤 곡이 가장 좋았는지 물었다. 그제야 여러 생각이 몰려왔다. 프로그램 내용이나 음악이 어렵지는 않았을지, 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을지, 춥지는 않았을지. 그리고 엄마 혼자 돌아갈 뻔한 귀갓길까지. 겸연해진 마음이 밀려왔다. 엄마 배고플 텐데. “두 번째 곡이었나? 그게 좋았어”.
엄마가 이야기한 두 번째 곡은 존 콜트레인의 'I Wish I Knew'였다. [Ballads] 앨범에 실린 스탠더드 곡으로, 해리 워렌이 1945년에 만들었고 뮤지컬 영화 ‘Diamond Horseshoe'에서 주연이었던 베티 그레이블과 딕 헤임즈가 부른 버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 후에는 존 콜트레인과 더불어 블루 미첼, 빌 에반스, 쳇 베이커, 키스 재럿 등 여러 아티스트가 연주했다. 내게 익숙한 건 딕 헤임즈의 목소리로 들을 때다. 그보다 훨씬 앞서 존 콜트레인의 버전을 들었음에도 말이다. 아마 어떤 한 장면 때문일 것이다.
그 장면은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 <상해전기>에서 찾을 수 있다. 댄스홀 배경 음악으로 딕 헤임즈가 부른 'I Wish I Knew'가 흘러나오고, 이어서 노년의 남성이 이 곡을 흥얼거리는(어쩌면 꽤 열심히 부르는) 모습이다. 곡의 멜로디가 상해라는 장소에 대한 교차하는 기억을 장면과 함께 관통한다.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영광, 피난처, 폭력의 기억, 현재. 제목처럼 삶의 어떤 부분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 테고…. 이미 살아버린 삶 뒤에 덧붙이는 미주에는 상상하던 미래에 가닿지 못한 시원섭섭함 같은 게 느껴진다.
나는 이 곡이 좋다는 이유로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들었는데, 정작 곡이 지닌 마음 하나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엄마가 내어 준 시간, 익숙하지 않은 곳에 자리하는 망설임, 살갑지 못한 나. 내가 그 생각을 미리 했었더라면 조금 더 다정하고 친절했을 수 있을까? 마치 거기에 응답하듯 엄마는 'I Wish I Knew'를 이야기했다. 가사도 없는 연주곡을 이렇게 꿰뚫어 보시다니. 나는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었다. I wish I knew….
*'I Wish I Knew'는 <상해전기>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