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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강사 Nov 12. 2022

중국 농촌맞춤 하이얼 세탁기

Point of View /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란?

필자가 대만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2008년, 리먼사태를 시작으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초대형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TSMC가 있던 대만 신주(新竹)시의 신주사이언스파크(新竹科學園區)는 그 이전까지 미국과 일본,유럽의 엔지니어들과 저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몰려든 영업사원들로 활기차고 희망이 넘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외국인 주재원들이 본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그들이 묵던 호텔들은 파산하고, 고급 아파트의 임대료는 대폭 떨어졌으며, 고급 식당과 술집들도 줄줄이 망했습니다. 저 또한 아쉽게도 2009년 초에 한국으로 복귀해야 했었죠. 2008년 금융위기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대만에서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08년 당시 필자의 주재원 사무실 창문에서 찍었던 신주사이언스파크 전경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중국정부는 중국 서부 7억명 이상의 농촌인구를 대상으로 컬러TV,세탁기,냉장고,휴대전화등의 4대 가전제품을 구입할때 정부가 가격의 15~30%까지 지원해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이라는 내수진작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상해나 북경에는 일본과 한국의 세탁기가 팔려나가고 있을때 중국의 전자제품 메이커 '하이얼'은 틈새시장이었던 서부지역에서 저렴한 세탁기로 판매를 확장중이었고 중국정부의 '가전하향(家電下鄕)'정책은 판매실적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배수관이 막히는 세탁기가 엄청난 숫자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 입니다. 파견된 A/S기사들은 고장원인을 확인하고서는 아연실색 했습니다. 흙이 묻어있던 작업복과 감자, 고구마, 배추, 무우같은 작물을 같이 세탁기에 돌려 세척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흙과 뿌리, 껍질이 배수관을 막아버렸고, 모터같은 주요 부품도 같이 고장나기 시작했던 겁니다.


세탁기에 감자, 고구마를 돌리다니...


If. 만약 여러분들이 2008년 이런 세탁기 대량 불량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하이얼, 산요, LG의 CS담당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통 메뉴얼을 보강하고 고객 교육을 강화시키겠죠? 비슷한 시기 미국의 한 할머니가 키우던 고양이의 털을 말리기 위해서 그 고양이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던 처참한 사례가 있습니다. 고양이를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안된다고 미리 메뉴얼에 고지하지 않았던 전자레인지 제조사는 한화 수십억원을 배상금으로 지불했습니다. 일본의 세탁기 제조사인 '산요'와 한국의 세탁기 제조사인 'LG'는 전자레인지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메뉴얼을 더 두껍게 보강하고, 중국 농부들에게는 "세탁기는 옷을 세탁하는 기계입니다. 농산물을 세탁기에 세척하면 안됩니다."라는 홍보활동을 개시했습니다.산요와 LG는 이런 대책을 실행하면서도 '후진국의 농민들은 제대로 된 세탁기 사용법도 모른다.'며 무시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이얼의 고구마세탁기

짜잔! 여기서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업체, 한국업체가 생각하지 못했던 세탁기를 중국업체인 '하이얼'이 출시했던 겁니다. "왜 세탁기는 옷만 씻어야 하나? 고객의 사용환경에 맞게 흙묻은 작업복, 수확한 농산물도 씻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것 입니다. 큰 변화없이 타성에 젖은 기존의 전자제품 업체에서는 이런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우선 배수관의 지름을 더 크게하고, 필터와 여과장치를 추가로 설치하고, 모터의 성능도 개선해서 '고구마'를 돌릴 수 있는 '고구마세탁기'가 완성되었던 겁니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타성에 젖어 고객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만심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신적인 필름을 개발해 카메라와 필름시장을 석권했지만 디지털화를 애써무시하다가 순식간에 폭망해버린 '코닥'이나 스마트폰의 개념을 최초로 완성했지만 기존 일반 휴대폰시장의 달콤함을 벗어나지 못해 정부관료같은 모습으로 가라앉아버린 '노키아'사례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세계 1위의 백색가전업체가 된 '하이얼'을 값싼 가격과 정부의 지원으로 급성장한 졸부같이 경시하는 우리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큰 변화와 혁신을 위한 말랑말랑한 뇌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수 없겠죠?


기억하세요!


왜 세탁기는 옷만 씻어야 하나? 고객의 사용환경에 맞게 흙묻은 작업복, 수확한 농산물도 씻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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