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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강사 Nov 13. 2022

거버 이유식과 패트리샤 무어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케팅전략 실수의 원인

1928년에 출시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네슬레의 '거버 이유식'을 아시나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거버를 상징하는 아기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아! 이거!" 하실겁니다. 

이 아기모델은 '앤 터너 쿡 (Ann Turner Cook)'이며 1926년에 태어나 얼마전인 2022년 6월에 95세의 나이를 세상을 떠났습니다. 1928년 이웃의 화가였던 '도로시 호프 스미스'의 그림으로 제1회 거버 베이비 선발대회에 참가해서 우승하면서 90년넘게 거버 이유식의 상징이 되었던 겁니다. 1974년 거버의 경영진은 갑작스런 매출 증가세에 놀라워하며 그 원인파악에 착수했습니다. 이와 잇몸이 좋지 않았던 노인들이 거버 이유식을 많이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겁니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거버의 마케팅 팀이라면 '노인용'이유식을 출시하시겠습니까?"


제가 이 질문을 10여년간 기업교육 현장에서 1,000여번 정도 던져봤습니다. 연령에 따라 다른 재미있는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2,3,40대의 젊은 분들은 "당연히 출시해야죠. 노인용 패키지를 따로 만들어 출시해야 합니다."라고 했고 5,6,70대의 비교적 나이드신 분들은 "음...노인용 이유식이라... 좀..."이런 답을 주셨습니다. 1974년 거버는 '노인용'이라는 단어를 노인들이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노인 (Elder)가 아닌 독신 (Singles)라는 제품명으로 노인용 이유식을 출시했습니다.

그래도 결과는 참패! 그냥 '앤 터너 쿡 (Ann Turner Cook)'의 아기얼굴이 그려져있는 아기용 이유식으로 판매했으면 지출할 필요가 없었을 많은 마케팅 비용과 제조비용을 날리며 실패했습니다. 


2019년초 KT의 퇴직예정자분들을 대상으로 '환경변화 대응전략'교육을 하면서 위의 거버이유식 사례를 공유했더니 60대 여성분이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습니다. 대구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70대 중반의 부부가 지하철문이 열리면서 함께 탑승했는데 남편이 빠르게 노약자석으로 몸을 던지면 자리를 맡고선 부인에게 "빨리 온나. 여 앉아라. (빨리 여기와서 앉아)"라며 재촉하자 부인이


또 저어 간다. 난 안갈끼다. (또 저기 간다. 난 안갈꺼야.)
직접 그린 삽화

라고 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다면서 쉬는 시간에 말씀해주셨습니다. "또 저기(노약자석)간다. 난 아 안갈꺼야" 이 말뜻이 뭔가요? 70대 중반인 그 여성분은 자기자신을 노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2,3,40대의 젊은 이들이 노인들에게 공감 (Empathy)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불가능에 가깝죠. 10여년간 강의를 하면서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해보시죠.



"자 여러분은 수십년이 지나서 80대 초반이 되었습니다. 자율주행차를 타고 오래간만에 대형유통센터에 갔더니 온통 은색으로 도배된 '실버코너'가 새롭게 생겼습니다. 그 코너안에는 노인을 위한 가변형 자율주행 휠체어와 비서로봇외에도 각종 노인용 식품과 도구가 가득합니다. 그 '실버코너'에 들어가실 겁니까?"



기꺼이 들어가서 구매하겠다는 젊은 교육생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면서 삻어하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났죠. 그러면 저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노인이라고 가정하면 노인용 코너에서 노인용 상품을 구매하기 싫으시죠? 왜 그런가요? 여러분들이 노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왜 노인용 이유식을 패키지까지 따로 만들어서 출시하신다고 하셨나요?"

하인즈의 노인용 식품

1869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설립된 식품회사 '하인즈'는 케찹,마요네즈와 유아식품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입니다. 1955년 이가 약한 노인들을 위해서 저렴하고 먹기편한 노인용 식품을 눈에 잘 띄는 노인 코너에서 팔았는데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쉽습니다. 여러분이 80대 노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노인용 코너에 가서 자랑스럽게 노인용 식품을 집을 수 있습니까? 사면서도 한숨이 나오겠죠. '아.. 나도 이런 음식을 먹을 정도로 늙었구나.'하면서요.


'라이프 얼러트'목걸이와 영화 '개목걸이'포스터


'라이프 얼러트'(Life alert)는 하인즈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1974년 출시된 노인을 위한 응급 구조시스템입니다. 요즘은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한 시계나 목걸이,반지의 눈에 잘 띄지않는 센서를 통해 혈압같은 여러 생체정보와 움직임,위치신호를 감지해서 가족과 응급구조기관에 바로 연락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있습니다만 당시엔 기술력이 떨어졌겠죠? 그래서 목걸이에 연결된 버튼을 노인이 직접 누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병원이나 911등 응급구조기관에 자동으로 연락이 되는 겁니다. 이 제품도 '참패'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쉽습니다. 여러분이 80대 노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자랑스럽게 응급구조 버튼이 달린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닐 수 있을까요? 목에 걸 정도가 되면 "아.. 내가 정말 늙었구나."하며 절망하겠죠? 마치 1991년의 영화 '개목걸이'에서 봤던 미래 교도소의 탈옥방지 목걸이 같은 느낌도 들었겠죠?


일본의 후지쯔는 2012년 통신사 NTT와 함께 노인용 스마트폰인 라쿠라쿠(らくらく) 스마트폰을 출시했습니다. 이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윈도우 스마트폰의 Style UI의 타일처럼 보기쉽게 큼직큼직하게 앱을 배치했고,돋보기 기능도 있었으며, 타이핑도 쉬웠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크게 천천히 들려주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는 50대이상을 타겟팅했었는데, 50대가 '노인'인가요? 70대도 노인이라고 하면 싫어하는 마당에 50대부터 사용하게 하는 노인용 스마트폰이라니 결과는 예상되시죠? 이 제품도 참패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쉽습니다. 여러분이 60대라고 생각해보세요. 멋있는 최신 폴드&플립 스마트폰이 아니라 '노.인.용.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식당이나 카페 테이블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요? 부끄러울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후지쯔는 이 사실을 늦게나마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우회전략'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노인'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가정주부'나 '어린이'를 위한 스마트폰! 그러자 거버 이유식을 사면서 '손주 먹이려고 사간다.'고 핑계를 대던 노인들 처럼 부담없이 이 스마트폰을 사게 되었던 겁니다.


"이런 실수는 왜 끊임없이 이어지는 걸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업에서 제품,마케팅,영업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중에 '노인'이 있을까요? 40대 중후반만 되어도 퇴사의 압박이 심해지고, 50대가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퇴사하며, 60대는 찾아볼 수 없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과연 노인고객에 대해서 잘 공감하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20대 현업담당자, 30대 중간관리자 ,40대 결정권자가 있을까요? 저는 부정적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세상을 보는 창도 자기의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에도 많은 실수가 있는거죠. 남자의 입장에서 만든 냉장고의 문이 '투명'하고, 젊은이의 입장에서 만든 노인용 제품에 '실버'라는 은색라벨을 떡하니 붙이고, 흡연자를 위한 담배가 '역겨운' 맛을 내고, 게임을 많이 하는 스마트폰에 게임 '성능제한' 설정이 되어있는 것 처럼요. 젊은이들이 앞으로 많은 돈을 벌려면 노인들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해야 합니다. 그들은 인구도 많고 돈도 많을거니까요.


2015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50세이상의 소비규모가 50세 이하보다 14% 정도 더 많았고, 이 격차는 점점 더 커질겁니다. 1999년 설립된 MIT의 에이지랩(Age LAB)은 끊임없이 노인들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젊은 학생들에게 노인들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생각하는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체험하고 깨달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노인 몰이해'로 유발된 실수의 흐름을 끊을 수 있겠죠?

자! 퀴즈입니다. 위 사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인학자이자 산업디자이너인 '패트리샤 무어 (Patricia Moore)'입니다. 사진을 찍은 1979년 당시의 그녀의 나이는 몇살이었을까요?


26살이었습니다. 눈이 잘 안보이게 만드는 안경, 귀가 잘 안들리게 만드는 귀마개, 촉감을 둔화시키는 장갑, 균형을 무너뜨리는 구두, 다리를 불편하게 만든 철제 보조기를 착용하고 3년간 미국과 캐나다의 크고 작은 마을과 도시 116개를 돌아다니며 26살의 젊은이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노인의 입장을 알아내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겁니다. 


고객에 대한 철저한 공감 (Radical Empathy)는 마케팅의 기본입니다. 다시 한번더 여러분들의 고객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래고 안되면 물어보고, 체험하세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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