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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창범 Jan 31. 2016

한라산 관음사

삶의 목적이 흐릿해진 시간

1100 고지로 차를 몰고 올라갔다. 하지만 눈꽃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 몇 날 며칠 비만 내렸으니 눈꽃을 기대한다는 게 어리석었다. 3일 동안 폭설 후에 4일 동안 쨍한 날씨를 기대한 나에게 어떻게 주야장천 비만 보여주시냐고 부처님께 따지러 한라산 관음사로 발길을 돌렸다.


"부처님. 이제 비는 그만 내리게 해 주세요"


아무 말씀이 없으신 부처님을 뒤로 하고 하산하려는데 안개 낀 숲 속 느낌이 좋다. 그 안에 어린 장끼들이 모여 무슨 작당 중이다.  


"어이 꿩님들아. 또 눈 온다는 소식은 없더냐?"
"검색해 봐~ 왜 그걸 우리에게?"


푸드덕거리며 날아가 버린다.


삶의 목적이 흐릿해진 시간. 다시 용맹 정진할 어떤 대상이 필요해졌다는 각성이 짧은 여행을 통해 느껴졌다. 오늘 누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등바등 살기 싫어서 제주로 내려왔더니,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끝도 없이 주어지는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높아만 갔다. 회피한다고 사라질 문제도 아니었다. 가지고 가야 할 것과 버리고 가야 할 것을 구분하고, 만날 사람과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을 구별하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이제 멈추련다.  

그저 내 갈길 가다 보면 내 손에 남은 것이 내 것이고, 내 주변에 남은 이들이 내 벗일 것을;;; 그동안 참 억지를 많이도 부리고 살았던 모양이다. 내 안에 감정의 찌꺼기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짜내는 것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갈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제 좀 제대로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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