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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창범 Feb 06. 2016

'세멘꽃'을 아시나요?

보존하고 살면  안 될까요?

세멘꽃이 뭐냐고요? 시멘트에 새겨진 꽃을 말하는 거예요. 미장이들이 시멘트를 바르고 굳기 전에 쇠흙손으로 슥슥 그려낸 것이죠. 요즘에도 시멘트를 사용하지만 이런 그림을 그리는 미장이들은 없습니다. 

세멘꽃이란 이름은 그냥 저와 제 지인들이 붙인 겁니다. 딱히 부를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가끔 이 꽃들을 찾으러 다닙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말이죠. 그런데 이 시멘트 꽃은 유독 제주에 많이 남아 있어요. 그건 아마도 제주가 아직은 다른 여타 지역보다 개발의 바람을 덜 받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최근 상황은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제주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핫플레이스로 각광받는 곳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개발 광풍에 과거의 흔적들은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 같군요;;; 


세멘꽃을  찾아다니다 보면 세련된 솜씨가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멋진 작품들도 만나게 됩니다. 적어도 10년이 넘는 내공을 뿜어내는, 작품이라 칭할 만한 그런 세멘꽃들도 만나게 되지요. 


개발로 사라진 함덕리의 세멘꽃 ⓒ신창범

지도에 표시를 하고 근처에 갔다가 반가운 마음에 다시 찾아가 보면 아뿔싸! 집은 헐리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세멘꽃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경우도 참 많습니다. 이런 꽃을 가진 집주인들에게 늘 말합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작품이니 만약 헐게 되면 따로 떠내서 보존하세요."

"직접 하기 힘드시면 저에게 연락을 해 주시면 보존할 방법을 찾아드리겠습니다." 


 

세멘꽃을 찾아다니는 트래킹은 제주올레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죠. 제주올레가 남성적인 길 걷기라면 세멘꽃 탐방은 상당히 여성적인 길 걷기입니다. 올레길 걷기는 목적중심적인 반면에 세멘꽃 탐방은 그야말로 과정 중심적이고 상당히 섬세한 눈길을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세멘꽃 탐방은 어디에 있을지 모를 꽃들을 위해 정해진 코스 없이 하나의 마을을 세밀하게 뒤져나가는 방식이거든요. 그러다가 꽃 하나를 찾아내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릅니다.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담벼락에 당시 건축을 하는 사람들의 솜씨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왕궁에는 꽃담이 있었고, 민가에서도 꽃그림을 그려 넣었죠. 지금도 이 전통(?)은 명맥을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저분한 동네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을 담벼락에 꽃들을 페인트로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인트로 그려진 꽃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가끔 제주의 시골 마을 올레길을 걷다가 시멘트를 바른 담벼락에 새겨진 세멘꽃들을 발견합니다. 페인트로 그린 것이 아니라 시멘트를 바르고 굳기 직전에 꽃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대개 30여 년 이상된 낡은 건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일을 맡은 미장이들이 한껏 솜씨자랑을 해 놓은 것이죠. 

'미장이'란 건축 공사에서 벽이나 천장, 바닥 따위에 흙, 회, 시멘트 따위를 바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제주에선 미장이를 보통 '사깡'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일본말의 잔재인듯하네요.

미장이가 아무리 솜씨 자랑을 하고 싶어도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그려놓을 수는 없을 터이고, 그려 넣을 당시를 회상하는 노인들은 일종의 서비스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더군요. 솜씨 좋은 미장이를 만나거나 마음 좋은 건물주를 만나면 꽃이 만들어지는 것이랍니다. 솜씨 좋은 미장이가 주인한테 서비스로 만들어 준, 쓱쓱 그려낸 이 아름다운 세멘꽃들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달 비정기적으로 세멘꽃 탐방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2월 21일(일요일)에 탐방이 있으니 참석 가능하신 분들은 댓글 달아주세요. 출발은 오전 11시 제주시 비앤비 판 게스트하우스입니다. 탐방 지역은 평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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