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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창범 Mar 11. 2016

바람의 여신 '영등'

사지가 찟겨 죽어 풍요를 가져다주는 여신

제주의 여신들은 대부분 죽음으로 여신의 반열에 오르는군요. 설문대는 무려 500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 솥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영등할망은 어부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가 사지가 찟겨 죽임을 당했지요. 죽어야 그리고 썩어야 새로운 생명들이 살아갑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은 없습니다. 제주시 원도심에 있는 쿰자살롱의 인문학강의에서 서순실 심방은 굿의 효험은 심방의 능력보다는 굿을 신청한 사람의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한다는 말을 했지요. 기성종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썩어지면 세상이 풍요로워지는 것이지요.


음력 2월1일이면 제주시 수협위판장에서는 영등할망 환영굿이 펼쳐집니다. 영등환영제는 영등달인 음력 2월 1일 제주에 서북계절풍을 몰고 와 풍어를 가져다주는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행사입니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할 때는 며느리를 데려왔다 하고 날이 좋고 화창할 때는 딸을 데려왔다고 표현하죠. 아무튼 음력 15일까지 보름간 제주에서는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제낄 것입니다. 너무 그녀를 원망하지 마세요. 바람의 여신이 바다 밑까지 뒤집어놔야 바다농장이 풍성해진답니다.


영등환영제는 모든 신을 초청하는 '초감제', 본향신을 청하는 '본향들임', 용왕과 영등신을 청해 어부와 해녀의 해상안전과 풍요를 비는 '요왕 맞이', 마을 전체의 액을 막는 '도액 막음', 모든 신을 돌려보내는 '도진' 순으로 진행됩니다.


한수리의 신맞이와 제주시의 영등환영제를 시작으로 제주 전역을 돌며 영등맞이 행사가 펼쳐집니다. 행사가 열리는 마을을 따라다니며 각 마을마다 독특하게 구성한 마을영등축제에 참여해 보세요. 어제는 영등할망의 손이 떠내려 왔다는 판포리에서 행사가 있었습니다. 


영등달 제주에는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댑니다. 바람의 여신 영등의 손을 맞이하던 어제 판포포구. 서 있기도 힘든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일년 사시사철 이런 바람이 분다면 어찌 사람이 살 땅이 될까요;; 그저 이 영등달이 지나면 바람도 잦아질 것입니다. 요동치던 시간이 있어야 침잠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제주에 계시다면 가슴에 묻어두었던 납덩이 같은 회한들을 영등이 만들어 내는 바람에 날려보내시기 바랍니다. 지워질 것들은 지워지고 새롭게 돋아날 것들은 돋아날 것이겠죠.


영등맞이 행사에는 구경꾼과 참가자 구분이 따로 없습니다. 나눠주는 깃발을 들고 바람부는 데로 흥겨운 장단에 맞춰 같이 참여하시면 됩니다. 미친듯이 바람부는 판포 포구의 저녁. 그 쌀쌀한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아이들과 어르신들은 영등할망을 맞아들였습니다. 비록 손 하나였지만;;;.  그 하루를 위해서 수고하고 애쓴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덕분에 즐거운 축제를 즐겼습니다.


고성리의 영등굿과 제주시 칠머리당에서 열리는 영등송별굿도 추천합니다. 제주를 제주답게 만들어나가는 것은 제주가 지켜온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영등이 세대를 이어 전승되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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