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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창범 Jan 18. 2016

지운다는 것, 지워진다는 것

사진을 없앴다. 사랑을 지웠다.

2013년 10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총 189컷을 찍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을지 모른다. 암튼 오늘 모두 삭제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지만 일단 사진은 다 지웠다. 이제 새로운 사진을 찍어야 한다. 지금은 2016년이다. 


"아니 왜 자꾸 일부러 지우세요? 나이 들면 들수록 저절로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잘 지켜도 모자랄 판인데?"

"지워야 새로운 마음이 자라지;;;"

" 자꾸 버려야 또 사지. 이건 쇼핑의 철학이고, 추억은 부러 버리지 마세요."

"문득문득 남아있는 그 사진들 속의 어떤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서;;;;"

"'창고'를 하나 만드시고 넣어버리세요."

"그렇게까지 그녀가 알아주길 바랍니까?  그것도 자기중심적이네요. 그것마저도 버리세요!"

"암튼 지울 수 있는데 까지 왔다는 것이 중요해"

"자신이 지워진 것을 안다는 것도 고통일 거예요."


알 파치노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 <맹글혼>이 기억난다. 그가 자신의 세계로 침잠해 스스로를 가둔 것은 떠나간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많이 쌓여서다. 그는 매일같이 자신에게 '완벽했던 여인' 클라라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답신은 없다. 돌아오는 것은 반송된 편지일 뿐. 그는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사방에 사람이지만 아무도 나한테 의미가 없어." "내일은 늘 찾아오지만 난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어." "세상은 너무 변했고, 난 너무 오래 살았어. 당신 없인 아무 의미가 없는 걸."


그가 자신 스스로 가둔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클라라에 대한 추억들을 버리는 것이었다. 추억 속에 사는 사람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 그것이 내가 사진을 지운 이유다. 지운다는 것도 고통이고 지워졌다는 것을 아는 것도 고통이다. 아니 고통이 아니라 이젠 과거의 추억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저항이 고통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삼다수 목장으로 일부러 차를 몰았다. 눈발 날리는 삼다수 목장. 영하의 기온은 아닌 것 같은데 싸락눈에 바람이 장난 아니게 몰아친다. 눈보라 치는 벌판에 서서 나뭇잎을 다 떨구어낸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암튼 그렇게 과거를 정리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마치 의식을 치르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웠다는 것을 자축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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