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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Wrong

Pino Palladino & Blake Mills

by 최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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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 팔라디노는 베이스 연주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팝 음악이라고 해도 가수 뒤에 선 세션 연주자에게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베이스 연주자라면 진정한 관심의 사각지대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노 팔라디노는 그가 가진 음악성 하나로 주목을 받은 지 오래된 드문 연주자이다. 팝 음악의 세션 연주자로 주로 활동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히 남긴 이들은 많지 않은데, 모타운 음악을 정의 내리듯 했던 제임스 재머슨이나 뉴욕 스튜디오 씬의 전설이었던 척 레이니, 앤쏘니 잭슨 등을 떠올려본다. 더 이전 세대로는 캐롤 케이, 후배로는 마커스 밀러나 윌 리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피노 팔라디노는 영국 출신의 연주자라 미국의 대중음악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미국의 시장에 깊숙하게 개입하게 되었다. 디안젤로와 존 메이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피노의 베이스 연주를 원했다. 소울트로닉이라고 부르던 당시의 디안젤로의 밴드를 보면 오직 피노 한 사람만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어 그들의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보인다. 다들 브라더들인데, 세대도 국적도 인종도 다른 피노가 그들과 함께 펑키함의 극치인 음악을 만들어간다.


Chicken Grease ( D'Angelo)



존 메이어 트리오에서 피노의 연주 역시 인상적인데, 스티브 조던과 함께 파워 트리오의 편성으로 꽉 찬 음악을 들려준다. 디안젤로와 함께 연주하던 음악은 굳이 장르로 구분 짓자면 네오 소울일 텐데, 존 메이어의 음악은 블루스가 깔린 록 음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션 베이시스트라고 하면 특정 장르에 갇혀있지 않고 어떤 스타일이건 설득력 있게 연주해 내는 것이 필수적인 덕목일 텐데, 피노의 경우에는 그런 수준을 넘어선다. 그냥 그 밴드 멤버인 것처럼, 그 음악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더하고 있다.


Who Did You Think I Was (J. Mayer)



마크 노플러, 돈 헨리, 엘튼 존, 에릭 클랩튼, 제프 벡, 폴 영, 더 후, 에드 시런, 티어스 포 피어스, 로드 스튜어트, 폴 사이먼, 아델, 존 레전드, 호세 제임스, 비욘세.... 그가 세션으로 참여한 아티스트의 명단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는다. 그야말로 세션 뮤지션으로 가질 수 있는 커리어의 최고봉에 다다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정작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은 여태껏 없었는데, 블레이크 밀즈와 함께 만든 이 음반이 본격적인 그의 첫 (공동) 리더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발표된 게 2021년이니 1957년 생인 피노 팔라디노로서는 환갑이 한참 지나서야 그의 이름을 건 음반을 냈다는 얘기가 된다. 애플뮤직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검색을 해보면 몇몇 다른 음반이 뜨기는 하는데, 역시나 피노 팔라디노의 이름이 전면에 드러난 음반은 이 음반이 유일하다, 지금까지는.


Just Wrong (B. Mills, P. Palladino)



한동안 운전할 때에는 이 음반만 주구장창 틀어놓았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최근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대신 이전에 들었던 음악이나 잘 알고 있는 아티스트의 모르던 음악을 찾아 듣곤 했다. 그러던 차에 아예 새로운 음반을 듣고 빠져드는 건 모처럼만의 일이었다. 피노 팔라디노의 연주는 늘 들어왔다고 해도. 그리고 함께 음반을 채운 블레이크 밀즈는 낯선 이름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레이크 밀즈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로 활동해 온 모양인데, 그가 참여한 음악은 대부분 내 관심사 밖의 스타일이었다. 피오나 애플, 잭 존슨, 브루스 혼스비 등 이름만 들어본 이들이었으니까. 피노 팔라디노와는 두 세대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난다.


Pino Palladino, Blake Mills, Sam Gendel의 라이브 버전인 Just Wrong



이 음악이 유독 나에게 와닿은 이유는 재즈의 유산을 받아 든 채로 여전히 음악적일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재즈에 탐닉하는 연주자들은 멜로디와 화성, 리듬을 극한으로 탐구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자극을 찾아 끝없이 헤매다 보면 어느새 듣는 이들과는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그들만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들이 쌓아 올린 성취의 수준이 높으니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를 위한 음악인가 하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정 반대의 길을 택해 멜로디와 화성, 리듬의 정보를 철저히 제한하고는 다른 요소에 집중해 음악을 만들면 이내 재즈와는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된다.


이 음반을 듣고 감동한 이유는 적당히 즉흥적이고, 적당히 새로운데 한편으로는 적당히 아웃한 느낌이 잘 섞여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음반 감상을 강요하지도 않고, 분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중을 향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의식의 과잉에 휩싸인 것 같지도 않다. 어떤 장르에 포함시켜야 할지 애매한 느낌이다. 그런데 또 연주는 가히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중심의 음악을 들을 때 종종 느껴지는 설익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 이 음반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한 동료 아티스트의 포스팅을 보고 나도 모르게 DM을 보내고 말았다. 평소라면 좀처럼 하지 않았을 행동인데, 이 음반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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