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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simodo

John Patitucci

by 최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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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베이스 연주자이지만, 베이스 연주자의 솔로 음반은 좀처럼 듣지 않게 된다. 앙상블 전체의 균형을 생각하면서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표현의 75퍼센트만 꺼내어 쓰던 베이스 주자가, 자신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솔로 프로젝트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펼치고 나면 음반이 십중팔구 피곤해지거나 지루해지기 마련이었다. 베이스 연주는 경이로울지라도. 어쩌면 나는 베이스라는 악기 자체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베이스 연주자는 아닐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의 곡을 몇 개 써서는 가 닿을 수 있는 최고의 뮤지션을 섭외해서 녹음하곤 한다. 제법 그럴듯한 음악이 남겨지지만, 이게 누구의 음반인지, 과연 이 사람이 음악적으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한 것인지 알 길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태도를 갖고 있다 보니 굳이 리더작을 발표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었다.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라성 같은 베이스 연주자들도 자신의 음반에서는 '굳이....?' 하는 음악을 들려주곤 했으니까. 그래도 내 안에 어떤 음악적인 이야기가 쌓여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솔로 음반을 준비해 보다가 뒤엎어버리기를 몇 년째 반복하고 있다. 이상은 높지만, 현실의 나는 너무도 작은 존재인 탓이다.


존 패티투치는 LA의 가스펠과 세션 씬을 통해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되었지만, 그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은 누가 뭐래도 칙 코리아의 일렉트릭 밴드와 어쿠스틱 밴드를 통해서일 것이다.


Got A Match? (C. Corea)


당시만 해도 흔치 않던 6현 베이스를 들고는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연주를 들려주며 자코 파스토리우스 이후에 베이스가 가닿을 수 있는 표현의 폭을 또 한 번 넓혔다. 1980년대 중반이면 그의 나이도 고작 이십 대 중후반 정도였을텐데 음악계에 흔치 않은 성취를 이미 남겼던 것이다. 게다가 더블 베이스 연주 역시 그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만큼이나 랭귀지와 기술적인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이전까지 더블 베이스 주자가 일렉트릭 베이스를 설득력 있게 연주해 낸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두 악기 모두 단연 최정상의 수준으로 연주해 내는 존재는 존 패티투치 말고는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Humpty Dumpty (C. Corea)


칙 코리아의 권유와 도움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솔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퓨전 재즈가 재즈계를 지배하던 시기인 데다가 그 자신 퓨전 스타일의 총아와도 같은 존재였다. 데뷔작 [John Patitucci]부터 [On The Corner], [Sketchbook] 등으로 이어지는 초기의 리더작들은 일렉트릭 베이스를 중심으로 그의 화려한 연주와 대담한 작곡을 들을 수 있는 수작이었다. 이어지는 [Heart Of The Bass]는 6현 베이스를 위한 콘체르토를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 스타일과의 조우가 담겨있는데, 현재의 시점에서 보아도 드문 작업이다. 어쩌면 아직 음반이 팔리던 시기라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여력이 그들에게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Heart of the Bass (J. Patitucci)



사실 그 뒤에 이어지는 몇 개의 음반들을 나는 훨씬 더 좋아하는데, 분명한 변화가 있다.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을 담은 [Another World]도 잘 들었지만, [Mistura Fina]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완결적으로 들렸다. 존 패티투치는 평생 브라질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적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 번 이렇게 해볼까' 하는 식으로 적당히 컨셉을 잡아서 만든 음반이 아닌 이유이다.



Bate Balaio (J. Bosco)


어쩌면 브라질 음악에 처음 노출된 게 이 음반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본토의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정통 브라질 음악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아니, 이런 음악은 도무지 처음 듣는데?' 하면서 반복해서 들었었다. 낯설고 이상한 것 같은 음악에 계속 마음이 끌리는 나 자신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그의 빛나는 솔로가 적지 않은 곡마다 실려있었다. 지금까지도 종종 다시 들어보는데, 보통의 음반들보다 베이스 솔로가 좀 자주 등장한다는 정도이고 사실 베이스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음반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음반을 쭉 들어도 좋다.


[Heart Of The Bass], [Another World], 그리고 [Mistura Fina]까지, 이렇게 세 음반은 명확하게 컨셉을 가지고 만들어졌는데, 그 이후 몇 장의 음반은 더블 베이스를 잡고 재즈 자체로 돌아온 음악이다. 나는 이 시기의 존 패티투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One More Angel], [Now], [Imprint], [Communion] 등이다.


Quasimodo (J. Patitucci)



그가 LA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것도 아마 이 시기일 것인데, 당연히 함께하는 연주자들에 변화가 생겼다. 칙 코리아와 함께하던 시절의 더블 베이스와 사운드도 변했다. 명확하고 강렬한 울림을 가진 소리가 몇 년에 걸쳐 점점 깊어지는 게 명확하게 들린다. 악기도 어느 시점에 바꾼 것 같고. 퓨전 재즈와 일렉트릭 베이스의 화신 같던 존재가 정통적인 재즈의 중심으로 바로 치고 들어왔다.


<Quasimodo>는 베이스와 드럼 연주로 시작하는데, 드러머는 폴 모션이다. 더블 베이스가 일정하게 모티브를 반복하고 있으면 그 위로 길지 않은 드럼 솔로를 연주하는 것으로 곡의 인트로가 구성되어 있다. 이런 아이디어는 끝없이 반복되어 온 진부할 수도 있는 선택인데, 폴 모션의 연주가 워낙 감각적이라 그런 느낌이 끼어들 겨를이 없다. 칼같이 정확하게 박자를 쪼개어 연주하려는 의지는 느껴지지 않고, 다양한 프레이즈를 통해 그림을 그려가는 게 제법 멋진 순간이다. 하이햇은 너무도 선명하게 들리고, 루스하게 튜닝된 베이스 드럼은 울림이 제법 들리는데 음량은 작아서 '조금만 더....' 하는 아쉬움이 생길 정도이다. 심벌류 중심으로 음악을 끌고 가는 재즈 드럼 셋의 밸런스는 원래 그런 편이다.


음반의 첫 곡에서 본격적인 첫 솔로 주자는 존 패티투치이다. '이건 내 음반이지' 하는 선언처럼 들리는데, 존 패티투치는 명확한 음정과 프레이징, 그리고 뛰어난 테크닉으로 당당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물론 이런 탁월함에 청자로서의 우리는 몇 십 년째 익숙해져 있지만. 이어지는 크리스 포터의 솔로도 훌륭하고, 곡이 끝날 때 일렉트릭 베이스로 다시 솔로를 이어간다. 아마도 밴드와 함께 리듬섹션의 후주 부분을 먼저 녹음해 둔 다음 멜로디와 일렉 베이스 솔로까지 오버더빙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헤드아웃까지 다 마친 뒤의 아웃트로라 리듬 섹션은 상대적으로 반복적인 그루브를 연주하고 있는데, 솔로 주자와 적극적으로 주고받는 방식으로 인터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빙한 솔로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존 패티투치의 음반에서는 종종 6현 베이스의 솔로 구간에 베이스 역할을 하는 파트가 있고 그 위에 제법 높은 음역대에서 선명한 음색으로 일렉트릭 베이스가 녹음되어 있다. 그래서 베이스 솔로 부분에서도 곡의 진행이 잘 들리고, 솔로의 내용도 더 잘 전달되는 면이 있다.


Calabria (J. Patitucci)


치열하게 창작하고 발표해 온 덕분에 리더작이 적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Imprint]와 [Communion]을 제일 좋아한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어진 젊은 거장의 면모가 느껴진다고 할까. 연주도 훌륭하고, 작곡과 편곡 및 연주 사이의 균형감도 뛰어나서 굳이 베이스주자의 음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무척 좋은 재즈 음반일 뿐이다.


아직 재즈 음반에 제작비를 조금 쓸 수 있는 시절이었는지, 참여한 연주자의 숫자도 적지 않고 해서 한 음반 안에서 다양한 색채를 들을 수 있다. [Communion] 음반 같으면 색소폰에만 브랜포드 마살리스, 조 로바노, 크리스 포터가 등장한다. 팀 리즈는 클라리넷과 플룻을 맡았으니 색소폰/목관악기족만 네 명의 연주자가 곡마다 자기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피아노는 브래드 멜다우와 에드 사이먼, 드럼은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호라시오 '엘 니그로' 헤르난데스가 참여했다. 그리고 여러 명의 타악기 주자와 현악기 주자들까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고 있는데, 편성이 좀 작아진 경향이 있다. 조 로바노,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함께한 트리오 음반 [Remembrance]도 멋진데, 유명한 재즈 곡들의 코드 진행을 가져와 멜로디를 새로 쓴 곡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Monk/Trane>은 <Giant Steps>의 코드 진행이고, <Sonny Side>는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의 코드 진행이다. 다른 이가 이런 컨셉의 음반을 냈다면 '뭐야, 좀 태만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존 패티투치가 여태껏 발표했던 음악이 그런 의구심을 잠재우는 것이다. 게다가 곡 제목에 아예 명확한 힌트를 새겨 넣었으니 유머러스한 느낌까지 있다.


Monk/Trane (J. Patitucci)


'Body of Work'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어떤 작가가 평생에 걸쳐 쌓아 간 작품의 총합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각각의 음반을 독립된 한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가끔씩 충분한 시간이 지나 그가 쌓아 올린 창작물을 쭉 펼쳐놓고는 감탄과 감동이 뒤섞인 채 감상하는 경우가 있다. 젊은 시절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은 채 계속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간 예술가들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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