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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so

Ivan Lins

by 최은창






재즈에 빨려 들어간 십 대 후반에 한동안은 데이브 그루신과 리 릿나워로 대표되는 GRP 사운드에 푹 빠졌었다. 예를 들어 데이브 그루신의 <Bossa Baroque>은 곡은 이런저런 배경음악으로 늘 접하게 되는 곡이었는데, 뭔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기분을 갖게 하는 마법이 있었다. 재즈라는 음악을 한참 연주하고 난 지금 다시 들어도 제법 좋은 곡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솔로를 위한 곡이 있는가 하면 곡 자체로 무언가 명확하게 스토리텔링이 되는 곡이 있으니까.


<Bossa Baroque> by Dave Grusin



아니면 리 릿나워의 <Rio Funk> 같은 곡 말이다. 베이스 연주자들에게는 피해 갈 수 없는 곡인데(나는 어찌어찌 피해 갔다), 역시나 멋지다. 정작 나는 <Is It You?>라는 보컬이 들어간 곡을 더 좋아했었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기타의 옥타브 주법도 마음에 들고, 전체적으로 재즈가 30퍼센트쯤 섞인 세련된 팝 스타일의 곡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90년대 초반의 한국에 어울리는 그런 정서였다. 아직 버블이 터지기 전의 대한민국 말이다. 당시는 이제 겨우 인터넷이 사용되기 시작하던 때라 이메일 주소로 자신이 좋아하는 곡 제목을 쓰는 게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Is It You?> by Lee Ritenour


그 둘의 음악을 쫓아가다 보면 꼭 만나게 되는 라이브 영상이 있었다. 유튜브가 없던 당시에는 뮤직 비디오 하나가 무척이나 귀했는데, 재즈와 같이 비인기 장르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GRP All-Stars Live From The Record Plant는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카페에서 -1990년대에는 그런 곳이 흔했다- 언제나 접하게 되는 영상이었다. 그 중간쯤에는 언제나 안경을 쓴, 전혀 가수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외모의 남자 가수가 등장해서 또 가수 같지 않은 솜씨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The Island> by Ivan Lins


돌아보면 퓨전 재즈를 듣던 당시의 나는 능수능란한 연주자들이 딱 떨어지는 상쾌한 리듬 위에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연주자의 기량도 중요했고, 깔끔한 음색이 잘 전달되는 좋은 음질도 필수적이었다. 그런 내게 이반 린스의 노래는 뭔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많았다. 일단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동네 아저씨 차림의 동네 아저씨 노래 같았다. 앞뒤로 나오는 다른 곡들과 너무 달라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사람은 누군데 저기 끼어 있는 거지? 하는 생각만 남았다. 그런 인상으로 남았던 이반 린스를 다시 돌아보게 된 건 <Acaso>때문이었다.


<Acaso> by Ivan Lins


아마도 음악을 이해하는 능력이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Acaso>는 글쎄, 한 마흔은 되어서 듣게 된 곡이니까. 그의 대표곡 중 하나지만 내게 다가온 건 제법 늦은 때였다. 어쩌다가 이 곡을 듣게 되었는지는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동안 가깝게 지내던 보사노바 가수 나희경이 브라질에 가서는 무려 이반 린스 본인과 듀엣으로 <Acaso>를 녹음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은 선명하다. 보사노바 가수로서 이반 린스와 녹음이라면, 이건 내가 허비 행콕과 녹음했다는 얘기나 큰 차이가 없는 거니까.


<Acaso> by Hee Kyoung Na(fit. Ivan Lins)


유명한 곡이다 보니 많은 가수의 여러 버전이 있는 곡인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페드로 마리아노라는 가수의 듀엣 버전이다. 반주를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세자르 카마고 마리아노인데, 성이 같아서 '아마도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부자지간이었다. 세자르가 아버지인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가 엘리스 레지나라는 사실이었다. 그 정도의 혈통이면 음악을 잘하는 게 정상이다.


<Acaso> by Cesar Camargo Mariano & Pedro Mariano



페드로는 이반 린스와는 달리 잘 컨트롤된 목소리로 정확하게 노래하고 있고, 세자르의 피아노는 팝 스타일에서 흔히 들을 법한 반복적인 4분 음표의 오른손 코드 중심으로 반주를 시작해 조금씩 발전시키는 정도라 화성 진행이 명확하게 전달된다. 간주에 이르러서는 키를 몇 번 바꿔가는데 2-5-1을 이용하면서 멜로디를 모티브처럼 반복하는 전조라 화성적으로 그다지 복잡할 것은 없는데, 감정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무척 효과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는 원래의 키로 다시 돌아와 노래가 이어진다. 살짝 둔탁함이 남아있는 세자르의 피아노 터치 뒤에 담긴 감정의 폭이 충실해서인지 별다를 것 없는 내용을 가지고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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