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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Jul 08. 2015

누적 피로



  누적 피로, 혹은 피로 누적이라고 했던 것 같다. 권투 경기에서 상대가 툭툭 건드리듯 날려대는, 보기에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잽을 꾸준히 맞다 보면 피로도가 쌓인다고. 그래서 경기 초반이라면 그 정도의 펀치로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선수가 후반에 맥없이 넘어가는 그런 광경 말이다. 아니면 단단해 보이는 금속 부품 무언가가 수명을 다 하고 나면 툭 하고 나무젓가락처럼 부러지는 그런 상황에 들어 본 것도 같다. 권투 경기건 기계 부품이건 나로선 도통 잘 모르는 얘기들이라 자신은 없지만.


  서울이란 도시에서 살아가며 누적된 피로감이 있다. 예를 들면 운전. 택시 기사들의 곡예나 번드르르하게 비싼 차들의 위협적인 운전 말이다. 차선만 바꾸려 해도 앞뒤로 난리가 난다. 피로감은 한계치에 도달한 지 오래니 빠아아앙, 하는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삶은 무너져 내린다. 악기도 아닌 경적 소리에 사람들은 감정을 잘도 담는다. 해서 매일 여지 없이 케이오 패를 당하는 건 나.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주차.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져버릴 듯이 사람과 자동차를 꾹꾹 눌러 담아 둔 도시라 이쪽의 차가 움직이면 저쪽의 차가 튕겨져 나간다. 길을 나설 때 이미 도착지에 과연 차를 세워 둘 자리가 있기나 할까 하는 염려가 시작된다.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하러 나온 구청의 차량이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으면 아마 한 장의 딱지도 떼지 못한 채 한 시간이고 인근을 빙빙 돌기만 해야 할 거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끝도 없이 퍼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럴 뜻은 아니었는데). 소음 말이다. 챙이 짧은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낀 채 어디선가 등장해서는 신호등이 멀쩡하게 제 일을 하고 있는 교차로 한 가운데에서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수신호를 날리는 땅딸한 체형의 베스트 드라이버들, 그들이 빽빽빽빽 불어 제치는 호루라기 소리 말이다. 이미 다른 소리로 누적된 피로가 끝간 데를 모르는 나는 또 큰 대자로 바닥에 뻗어버리고 만다.


  그나저나 빌딩의 주차 관리 아저씨 얘기를 하려다 줄줄이 엮여 나온 것들이다. 어제 일이다.


  주차 구획 선 안에 간만에 평행이 딱 맞게 차를 대었다, 한 번에. 스탑퍼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여간 불룩 튀어나온 검정 물체에 뒷 바퀴가 가볍게 닿는 정도로 멈춰 섰다. 이만하면  십오 년 운전 인생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다. 문을 열고 내려섰다. 아직 운전석 문도 채 닫지 않은 상태인데 득달같이 저 뒤편에서 한 아저씨가 등장한다.


  “아니 주차를 그딴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해! 다른 차들이 들어갈 수 가 없잖아요!” (아저씨가 요, 자를 붙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으니 공평하게 붙였다가 말았다 하기로 한다)


  와, 그런 삿대질이란 드물게 보는 것이었다. 서울의 주차 상황이라는 게 모두에게 짜증 나는 일이고, 그걸 관리한다는 게 늘 사람들과 시비가 붙기 마련이라는 것 쯤은 다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여긴 벌써 몇 번이나 와서 같은 자리에 차를 대었던 음식점이다. 건물 앞 주차 공간은 두 자리가 나란히 비어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에 매끈히 차를 댄 상태인데 불같이 화를 내며 삿대질 공세라니.


  “아니 아저씨, 여기 주차 구획선 안에 잘 댔는데 왜 그러세요?”


  “거기 가운데에 맞춰 대야지 한쪽으로 그렇게 대면 어떻게 해요? 차가 못 지나간다고!”


  뭐 문서 작성으로 치자면 슬쩍 왼쪽 정렬 상태이긴 했다. 식당 출입구를 덜 가리기 위해서도 그랬고, 반대편에 다른 차가 주차하면 운전석 문을 열기 힘들  듯해서 공간을 좀 띄워 준 거였다. 그리고 맹세컨대 그 옆으로 얼마든지 차가 지나갈 여유가 있었다, 운전 십오 년 했다니깐. 이 정도면 경기 시작하자마자 일 라운드에 한 방으로 넘어가버린 경우다.


  어찌어찌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보았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했다. 심장박동이 좀 느려지는 데에만 몇 분이 걸렸다. 자리로 돌아와 음식을 마주할  때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대신 눈치만 빤히 살피던 딸아이가 문득 내 곁으로 왔다. ‘아빠, 힘내’ 하며 꼭 안아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니 다리가 다 풀린 권투 선수 모양이지만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 그 아저씨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자기 삶의 원칙을 지켜간 것이겠지, 나름의 누적 피로를 떠안은 채.





  다시는 여기에서 밥을 먹나 봐라, 하던 심정이 탕수육 몇 점에 누그러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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