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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Sep 29. 2015

우연히 발견한,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



 날씨도 지나치리만큼 화창하던 어제, 그에게 두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바쁜 일정 중에도 낮잠을 자건 쇼핑을 하건 어떤 모양으로 건 쉬어갈 만한 날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은 멍하니 앉아 있는다는 것이 사치스러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제에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주의 바쁜 일정을 챙겨본다면 공연 이전에 미리 미리 읽어 두어야 할 악보들이 있었다. 지난 몇 주간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잠시라도 악기에 손을 대는 것이 좋았다.


  한 이 년 전쯤, 그가 한동안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주변 사람들 여럿이 얘기했다. 서울 생활이 너무 바쁘다고, 정신없이 쫓겨 사는 것이 벅차다고,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몇 년간이나 미국의 시골구석에서 지내고 난 그에게는 활기차게 움직이는 서울이란 도시가 제격이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 미국에 건너가기까지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삼사 년의 유년시절을 제외하고는 죽 서울에서 자랐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도 얼마간 나이가 든 걸까,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젊은 나이에 몇 년만이라도 재즈 클럽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지금 그에게 권태로울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 분명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음악을 들을 것이고, 그러다 어느 낮 시간에는 불쑥 악기를 꺼내어 들 것이다. 오전에는 곡을 쓰고, 밤에는 글을 쓸 것이다. 사람들을 기다리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것이다.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담아 둘 것이다. 몇 년간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는 어제 그 한낮의 시간에 책을 집어 들었다. 스타벅스라면, 2007년 서울의 스타벅스라면 이 층, 삼 층까지 사람들이 가득해야 할 텐데, 그곳은 한눈에 다 들어올만한 조그마한 매장조차 한가해 보였다. 한 귀퉁이에는 몇 권의 책이 -잡지가 아닌- 꽂혀 있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한 권 집어 들었다.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 였던가. 아주 유명한 -영화를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그의 귀에도 낯설지 않을 만큼 유명한- 영화 감독 스무 명 남짓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이었다. 예를 들자면 마틴 스콜시즈, 장 뤽 고다르 등의. 하지만 그가 한편이라도 본 영화를 만들어 낸 감독들은 몇 되지 않았다. 왕가위 -왕자웨이리고 읽던가, 하지만 그가 이십 대였던 90년대에는 누구나 왕가위라고 했었다- 와 우디 앨런만 유독 두 어 편 정도 보았을 뿐. 나머지는 그저 그 이름들을 들어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인터뷰들은 흥미로왔다. 어느 분야에서건 정상의 위치에 도달한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날 선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영화를 만드는 데에 얽혀있는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그는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몇몇의 단어를 재배치했다. 영화감독은 음악감독으로, 연기자는 연주자로, 시나리오 작가는 작/편곡자로, 관객은 청중으로. 그들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감독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음악으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있는지 생각에 잠겼다.


  언제나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정직한가, 하는.






  저 책을 처음 읽은 때가 2007년이라니 까마득하군요. 글도 적당한 시기에 소비되어야 한다 싶어서 조용히 한 구석에 저장되어 있던 것을 하나 꺼내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스스로를 '그'라고 지칭하며 관찰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곤 했었죠. 이제 보니 자아분열인가 싶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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