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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Sep 19. 2023

악기,  도구 혹은 욕망의 대상(1)

https://youtu.be/sEx1SYfs490?si=dqJHp-8KmNG3X226



  유튜브를 봤다. 그를 처음 발견한 것은 인스타그램이었을 수도 있다. Daniele Carmada라는 베이스 연주자인데, 도대체 반인반신이거나 외계인 둘 중에 하나인 게 분명하다.  아마도 이탈리아 사람인 듯.  미국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연주자로 넘쳐나는데, 요즘은 남미며 중동이며 하여간 세계 곳곳에서 놀라운 연주자들이 끊임없이 등장해서 정신이 없다. 유럽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의 재즈계가 지난 이삼십 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저런 사람들을 볼 때면 오히려 그들과 거리가 더 멀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곤 한다.


  물론 기술적으로 압도적이지만 좌절스러운 것이 그것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세련된 음악적 취향이 테크닉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점이 더 감동적이었다. 빠르고 듣기 싫은 연주는 흔하다. 물론 내 손은 절대 그런 속도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할 말은 없고 슬쩍 고개가 숙여지지만, 그래도 굳이 그런 소리를 내자고 밤잠을 설치며 연습할 생각은 없다. 흠, 애써 정신승리하는 걸까? 어쨌건 Daniele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주 개성적인,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분명 일렉트릭 베이스인데 어쿠스틱한 울림이 섞여있었다. 아마도 세미 할로우 바디,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악기의 몸통에 적지 않은 공간을 파낸 악기일 것이다. 거기에다 슬라이드며 풀링 오프 같은 왼손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더해 마치 시타르나 류트 같은 기타 족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거기에다 각종 이펙터를 아주 과감하게 사용해서 충분히 독주가 가능한 다채로운 사운드를 연출하고 있었다.


  역시나 저만큼 앞서나간 음악을 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귀에는 잘 가닿지 않을 것이다. 약간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추상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과는 조금 멀어진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몇 걸음 다가와주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는 대중에게 다가가지만, 예술은 감상자가  다가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하던 윈튼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영상을 보다가 점점 Daniele가 연주하는 악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좋은 악기를 한 가지로 정의하거나 순서를 매길 수는 없겠지만, 내 나름의 철학 비슷한 게 생겼다.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을 악기를 붙잡고 보낸 덕이다. 어떤 악기는 악기 자체에 명확한 소리가 담겨있다. 누가 쳐도 들으면 대략 알 만하다. 베이스라면 프레시전 같은 악기. 연주자의 개성이 전혀 안 느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악기 자체가 많이 들린다고 할까. 그런데 워낙 음악에 잘 묻어들어간다. 아마도 저 악기는 프레시전의 정 반대편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악기는 도구이며 매개체이다. 음악가의 정신 혹은 감정이 악기를 통과하여 소리의 형태로 세상에 발현된다. 그 과정에 끼어들어 있는 존재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악가 안에 들어있지 않은 이야기가 악기가 바뀐다고 생겨날 리 없다. 여태껏 몇 대의 악기를 사용해 보았으니 그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악기를 손에 넣기만 하면 좀처럼 풀리지 않던 음악의 비밀이 얼마간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이 짧은 편이니 숏 스케일의 베이스를 치면 지금껏 나를 가로막고 있는 테크닉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좋은 악기는 비싼 경우가 많으니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원한다고 모두 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나 역시도 그렇다. 이것조차 당연한 얘기다.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주저하지 말고 나에게 투자를 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 하며 집요하게 생각을 이어갔다. 역시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제는 성실하게 작동한다. ⓒjazzsnobs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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