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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Sep 12. 2023

The Moon

이제 곧 과거형이 될

  지난 한 주를 돌아보았다. 따지고 보면 절대로 짧지 않지만 어느새 휙 지나가버린 방학을 뒤로하고 개강을 맞이했다. 몇 안되는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해도 적지 않은 긴장감이 있다. 나도 모르게 학생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 순간 진심을 다해야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노력은 하고 있다.


  면접 때마다 그들에게 묻는다, 어떤 계기로 우리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사실 요즘처럼 세상 모든 것에 서열을 매기는 시대에 우리 학교는 탑 티어에 속한다고 하기 어렵다. 조금 서글프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삼 년 전부터 모든 학생들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이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교수들은 누구이며 어떤 교과과정을 가지고 있는지 대략 전해 듣고 온다는 얘기다. 학교의 지명도 보다 학과의 전문성을 보고 지원하는 학생들로 채워진다. 어쩌면 교육자로서 사치와 같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세 번의 클럽 연주가 있었다.


  한창때에 비하면 한가하다고 해도 될 만한 일정이지만, 돌이켜보면 몇 주째 집에만 박혀있던 코로나 시절도 있었다. 이 정도면 퇴물 비슷한 존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만 파묻힌 존재같지는 않아 위안이 된다. 제법 좋은 연주도 있었고, 관객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까봐 부끄러운 날도 있었다. 집에 와서 다음날까지 내내 화를 내게 되는 날도 있었다.


  서울에 수많은 클럽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왔다. 어찌어찌 잘 버텨낸다 싶은 클럽도 몇 있지만. 그러니 새로운 클럽이 오픈하면 기대감도 있지만 불안한 마음이 더 크다. 여기는 잘 될까, 싶은 의구심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새로운 클럽이란 새로운 관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곳이면 재즈클럽이 어떤 곳인지, 아니 재즈란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조차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당연히 겉도는 느낌이 든다. 무대위에서 관객을 내려다보며 그들의 호흡을 느낀 게 벌써 이십 년을 훌쩍 넘는다. 공기의 흐름 같은 것으로 알 수 있다. 아, 오늘 밤은 꽤나 힘들겠는데, 하면서.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한 클럽으로 이동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막히는 길에 늦을까봐 조마조마하게 다니는 걸 원체 싫어하는 편이라 여유 있게 출발했다. 서울 시내의 건물들이라면 주차장이 늘 부족하니까 그것 때문에라도 일찍 가는게 낫다.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나 미리 도착한 클럽에서 기다리나 마찬가지다.


  생각보다도 일찍 도착했다. 슬쩍 차에서 기다리다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주차장 입구에서 클럽 사장님과 마주쳐버렸다. 뭐, 이렇게 된 거 내려가서 천천히 악기를 셋업하기로 했다. 차에서 더블베이스를 꺼내 지하 1층 클럽으로 옮기고 다시 올라와 앰프까지 챙겨 내려갔다. 여기는 베이스 사운드가 무대위에서 워낙 엉키는 곳이라 올 때마다 연주하기에 힘든 곳이다. 잘 아는 앰프로 어떻게든 소리를 잡아야 한다.


  무대에서 악기와 앰프를 연결하고 소리를 내 보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왜 연주할 때면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사실 답을 알고 있었다. 정답은 아닐 수도 있으니 가설 정도라고 하면 좋을까? 하여간 제법 확신을 갖고 있었다. 피아노 마이크가 문제야, 이렇게 좁은 무대에 저런 콘덴서 마이크를 쓰니 저기에 모든 악기 소리가 다 빨려들어가서 벙벙거릴 수 밖에 없지.


  마님께서는 요즘 들어 각종 재즈 연주가 일어나는 장소들에서 자꾸 업라이트 피아노를 두는 것에 대단히 뿔이 나 있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연습용이다, 공연을 위해서는 사이즈가 작다고 해도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분의 지론이다. 근데 예산 때문인지 무대 사이즈 때문인지 한두 군데 업라이트 피아노를 놓고 라이브 공연을 하는 공간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재즈 클럽이라고 부르는 곳들 중에도 더러더러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커다랗고 시커먼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보다 따뜻한 나무색의 소박한 업라이트 피아노가 공간의 분위기와 잘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클럽 주인도 보았다. 그렇구나, 그게 먼저인 사람도 있을수 있구나 싶었다.


  풀 사이즈 그랜드 피아노는 드럼과 비교해도 별 차이 없는 음량을 낼 수 있다. 물론 섬세한 재즈 드러머가 연주하는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지만. 그런 악기라면 연주자의 손끝에서 강약을 다 조절해가며 음악을 그려가는 것이 가능하다. 마이크를 사용해야 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무대 위의 소리가 훨씬 깨끗하다. 부족한 음량을 슬쩍 채워주는 정도로만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업라이트 피아노의 음량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러니 믹서의 피아노 채널에서 볼륨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 마이크에는 드럼이며 베이스, 색소폰의 소리까지 다 섞여들어가 있어 생각처럼 피아노가 잘 들리도록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소리는 혼탁해진다.


  연주 시작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다른 연주자들은 아마 이삼십 분 전이 되어야 도착할 것이다. 정시에 헐레벌떡 들어오는 연주자도 한 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아노 마이크를 어떻게든 손보고 있는게 나았다. 이대로면 두 시간 내내 힘든 연주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마이크에 적혀있는 모델명으로 검색하니 이내 매뉴얼을 찾을 수 있었다. 지향성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더해 로우 컷 필터도 있었다. 하이퍼카디오이드, 옆쪽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최대한 배제하고 마이크 앞쪽의 소리를 주로 받아들이는 패턴이다. 이거면 그래도 얼마간 도움이 되겠지. 로우컷 필터는 지금처럼 악기에 마이크를 갖다대다시피 설치할 때에는 필수적이다. 근접효과라고, 마이크가 음원에 가까워지면 저음이 늘어난다. 피아노 마이크에서 저음이 엄청 쌓일수 밖에 없었다.


  믹서로 가서 피아노 채널을 확인해 보았다. 이런,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쌍시옷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 이퀄라이저가 모두 최저치로 내려져 있었으니까. 보통 중앙이 0이고 여기에 맞춰져 있으면 특정 주파수 대역을 올리거나 낮추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이크가 받아들인 소리를 그대로 내보낸다는 것. 그런데 종종 원하는 음색을 찾기 위해 이퀄라이저를 적절히 조정한다. 하지만 모두 최저치라니(아마도 –15db였을 것이다),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모든 이퀄라이저 밴드를 0으로 되돌려 맞추고, 게인값을 적절하게 잡았다. 그리고는 이퀄라이저를 조금씩 조정해갔다. 그러는 동안 피아니스트가 도착했다. 야 너 일찍 잘 왔다, 아무거나 좀 치고 있어봐, 하고는 피아노 소리를 잡았다. 어때, 이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네, 지금은 괜찮은데 이따가 밴드랑 같이 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것 같아요. 그래, 만약에 연주하다가 잘 안들리거나 하면 얘기해,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긴 한데.


  이쯤 하고 있자니 사장님이 무대로 다가왔다. 사장님, 이러이러해서 피아노 마이크를 좀 손봤어요. 그래요? 밖에서 듣기에는 좋았었는데 연주하기에 힘들었어요? 아아, 네에, 좀. 아마 무안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게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날의 연주는 훨씬 수월했다. 내가 뭘 어떻게 연주하는지 드디어 드러머가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두 시간동안 단 한 명의 관객도 들지 않았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이번 달 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제 겨우 연주할 만 한 상태가 되었다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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