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샌토로 지음 | 황덕호 옮김, 을유문화사
우리에게 재즈란 어쩔 수 없이 외국의 것이다. 이 책, 『찰스 밍거스: 소리와 분노』를 통해 접하게 되는 시기인 대략 1940년대부터 1970년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때 그 시절의 우리에게도 제법 그럴듯한 재즈가 있었다고 누군가는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해방 전후며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나라에 과연 듀크 엘링턴이나 찰리 파커와 같은 존재가 있었는지, 그들이 남긴 음악만큼 후대에 이르러서도 지속적으로 감상되고 연주되는 방대한 양의 작품이 쌓였는지 물어보고 싶다. 차라리 당시의 우리는 그런 음악을 갖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타자성을 인정하고 나면 그들의 음악을 조금 더 잘 들어낼 수 있게 된다. 재즈가 왜 미국의 음악인지, 그중에서도 아프리카계 흑인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성장했는지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재즈라는 음악, 최소한 그 시절의 재즈를 어떻게 감상하는 데에 있어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에서 험한 인생을 살아내며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 냈다. 빌리 홀리데이가 <Strange Fruit>을 노래하고, 마일스 데이비스가 경찰의 곤봉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던 시절이다. 흑인은 식당에서 쫓겨나고 주에 따라 인종 간의 결혼이 법으로 금지되었던 때의 미국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몇몇은 그저 음악 안에 좌절과 분노를 담아 표출했고, 어떤 이들은 매일의 삶을 투쟁하듯 싸워가며 살아가는 한편으로 음악을 연주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재즈를 1990년대 중반의 서울에서 접했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 다른 나라의 문화가 앞다투어 소개되던 시절이었다. 금기시하던 일본 문화마저도 개방되던 그 시기에 재즈는 미국 문화, 다시 말해 선진 문물의 상징으로 소비되었다. 이국적이며 세련된 그 무엇이어야 했다. 그러니 적당히 흥겨운 선을 넘어가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거칠고 격렬하며 때때로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느낌이 드는 음악은 우리 모두에게 낯설었다. 내가 그들의 음악을 조금 더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찰스 밍거스의 음악이 마음을 움직인 건 2020년대가 되어서였다. 워낙 배움과 깨달음이 늦게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해도 삼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이다.
『찰스 밍거스: 소리와 분노』의 발간 소식을 접하고는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철저히 내 기준에서 판단하게 된 것이지만, 과연 이 땅의 재즈팬 몇이나 이 책을 사서 읽을까 싶었다. 이전에 나온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이나 『쳇 베이커: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와는 다르다. 그나마 빌 에반스나 쳇 베이커의 음악은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게다가 분량도 800페이지가 넘고 그에 따라 책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초반 몇십 페이지를 넘겨본다고 해도 쉽게 계산대로 들고 갈 것 같지 않은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수많은 이름이 쏟아지듯이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밍거스 삶의 주변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책 내내 밍거스의 방대한 일화들이 소개되는데, 대부분 누구와 이러저러한 이유로 싸웠다는 얘기들이다. 살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백인인 부인 뒤에 숨어 드러나지 않아야 하던 것이나, 백인 여성과 결혼한 흑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서 쫓겨나는 것, 샌드위치조차 식당에서 먹는 게 거부당하던 것 등 끝이 없었고, 이 책은 그 현장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그 시절 흑인으로 미국 땅에서 살아가며 부당함을 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우게 되는 것이었다. 밍거스의 경우에는 거기에 더해 분노조절장애라고 해야 할 그의 불완전함이 더해져 있었다.
이백 페이지 정도, 제법 읽어나가야 맥스 로치,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등등 재즈 팬들에게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왠지 친근한 기분이 들고 이야기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도 그때쯤이다. 밍거스의 음악활동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간다. 그가 데뷔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만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배급사를 찾아가 밀린 정산금을 직접 수금하는 것이나(물론 여기에도 제법 싸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메시 홀에서의 라이브 음반의 제작과정 같은 것이 있다. 데뷔 레이블을 통해 아트 블레이키, 쌔드 존스, 퀸시 존스, 테오 마세로 등과 같이 작업한 것도 간략하나마 소개된다. 이쯤 되면 모던 재즈의 팬들은 흥미진진하게 읽을만하다. 밍거스가 이끈 재즈 워크숍도 소개된다.
그 시절, 1950년대 후반의 미국은 시민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투쟁적인 찰스 밍거스가 이 시기에 음악으로 강렬하게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을 리 없다. <Fables of Faubus>는 아칸소 주지사가 연방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흑인 학생의 입학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곡이다. 비록 음반에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 버전이 담겼지만 말이다.
[직립원인 Pithecanthropos Erectus]나 [밍거스 왕조 Mingus Dynasty], [검은 성자와 죄지은 여인 Black Saint and the Sinner Lady]와 같은 밍거스의 대표 앨범의 이름을 따온 장에서도 저자는 음악 자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다 수집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 끝없이 이어지는 일화들을 들려주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밍거스의 단단한 팬이라면 사소해 보이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라도 더 알고 싶어질 테지만,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태도로 밍거스의 역작인 [Mingus Ah Um] 음반을 말할 때면 조금 아쉬워진다. 전기를 읽으면서도 찰스 밍거스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하기보다는 그의 음악을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에 관한 정보가 궁금하기는 해도, 음악이 더 잘 들려올 만큼만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책을 덮고 음반을 한 번 다시 듣고 싶어지는 시점이다. 에릭 돌피며 재키 바이어드와 같은 밍거스 밴드의 핵심 멤버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동안 책도 절반 이상 지나고 있다.
조금 책장을 빨리 넘겨야 요즘 연습하는 곡, <Duke Ellington’s Sound of Love>에 관한 얘기를 찾을 수 있었다. 사라 본이 불러주기를 기대하며 리드 시트와 가사를 보냈다는데 사라는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라 본 대신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부르고 연주하고 있는 곡이 되었다.
그쯤 읽고 있자니 갑자기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대니 믹슨, 몇 년 전에 만나 딱 두 번 같이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다. 사실 전혀 모르던 할아버지인데 이런저런 소개로 만나 잼 하듯이 하루 공연을 했었다. 그때 연주가 마음에 들었었는지 다음 해에도 다시 연락이 왔다. 반갑게 만나고 인사를 나누자니 첫 해 연주했던 실황을 녹음해서는 음반을 냈다고 하며 백 달러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이야, 이거 진짜 올드스쿨인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양반과 공연 전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찰스 밍거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70년대 중반, 대니는 밍거스의 밴드에서 꽤 오래 연주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밍거스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게 다행이다 싶다. 지금 같은 존경심이라면 대니를 사이에 두고 계속 밍거스를 생각하느라 연주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전기가 밍거스의 말년에 이르면 제프 벡이 연주한 버전의 <Goodbye Pork Pie Hat>에 대한 얘기라던가 조니 미첼과의 만남과 그녀의 [Mingus] 음반에 관한 것까지 제법 다채로운 이야기들까지 빠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음악 작업에 관한 내용이 조금 더 중심이 되었다면 훨씬 더 흥미로운 전기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번에 책을 읽어낼 생각을 버리고 음반 하나를 들으며 해당하는 챕터를 읽으면 더 나으려나.
#찰스밍거스 #재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서평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