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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Dec 25. 2023

식단



  식단을 관리하기 시작한 지 좀 되었다. 몇 년 동안 지키다 포기하기를 반복해 와서 이제는 그냥 일정 기간 동안 좀 철저히 식단을 관리해서 몸무게를 좀 줄이고, 그다음에는 지속적인 요요를 겪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미국의 주가지수도 아니고 오르내림은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면 우상향 하는 것이다, 하고 인정해 버렸다고 할까.


  물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겉옷 사이즈가 하나씩 올라가고, 바지는 대부분 밴딩 팬츠로 바뀌었다. 최근 몇 년간 오버핏이 트렌드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몸도 커져가지만 옷의 선이 훨씬 더 넉넉해지니 입을 만했다(또 하나 다행인 건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어도 상관없는 유행이다, 전체적으로 지난 시대에 비해 드레스 다운해서 입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안경이었다. 한두 해 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맞춘 두 개의 안경이 왠지 모르게 얼굴과 균형이 안 맞아 보였다. 원체 고도근시라 안경을 쓰면 안경알은 턱없이 두껍고 눈은 실제보다 반은 작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안경테를 고르는 데에 제약이 많다. 일단 안경알의 두께를 가릴 수 있게 뿔테를 선택한다. 안경알은 작아야 한다. 얼굴면과 안경 사이에 공간이 많이 뜨지 않고 가까이 자리할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일단 다 충족시킨 다음 내 얼굴형과 잘 어울리는 크게 신경쓰지는 않은 것 같지만 제법 세련된 느낌을 주는 안경을 갖는 건 쉽지 않다. 아무리 심사숙고하며 안경테를 골라도 안경 렌즈가 들어가고 나면 느낌이 완전 달라진다, 언제나 좋지 않은 쪽으로.


  그래서 적당히 만족하며 잘 쓰고 다니던 안경이 언제부턴가 보기 싫어지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아침에 거울 앞에서 보면 안경이 못 생겨 보이는 거였다. 그새 유행이 지나간 건가, 아넬형, 뭐 이러면서 클래식이네 유행을 안타는 기본 안경이네 하던 수많은 유튜버며 블로거들의 얘기는 역시나 믿을 게 못 되는 거였나 싶었다. 


  그러던 안경 두 개가 식단을 관리하고 한 달 정도 만에 적지 않은 살이 빠지고 나니 다시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긴데, 안경은 딱히 제 모양을 바꾸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계속 있어왔다. 바뀐 건 나와 내 얼굴형이었으니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 보인다면 일단 나를 의심해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일단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 슬쩍 비난해보려 한 건 옹졸한 인격 때문이었나.


  안경이 잘 어울리게 하려고 살을 뺀 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요즘처럼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에 마냥 대책 없이 세월의 흔적을 온몸에 담는 중년 아저씨가 되어가는 내 스스로가 싫었다. 가끔씩 예전 사진을 보면서 흠칫 놀랄 때마다 ‘그래도 내 또래 다른 직장인들 망가진 것보단 괜찮잖아, 이 정도면 평균 정도라구’ 하면서 정신승리라고 해야 할지 자기 위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생각을 해 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버텨오다가 갑자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이제 더 이상은 물러서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 것에 가깝다.


  그래서 일단 운동을 시작했다, 세 달 정도. 운동하는 게 너무 싫은 사람이라 평생 이렇게 꾸준히 많은 운동량을 지속해 본 적이 없었다. 같은 운동을 반복하니 체력이 향상되는 건 눈에 띄었다. 십 분 운동을 하고 나면 바닥에 누워 가쁜 숨이 진정될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던 사람이 한 시간을 거뜬히 해낼 만큼 나아졌다. 운동을 권하면서 ‘세상에 자신의 몸만큼 정직한 건 없어요, 사랑도 일도 자기가 노력했다고 해서 뜻대로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닐 때가 많지만 몸은 운동하면 변해요’ 하면서 운동을 권했던 한 모델 출신 연예인의 이야기는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그다지 살은 빠지지 않았다. 다들 아는 것처럼 체중 감량이 주된 목적이면 식단을 관리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운동량을 엄청나게 늘리면 결국 버티지 못한 살들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운동선수들이 그러니까. 


  그러다가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그저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지나갈 때였다. 겨울옷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몇 벌을 옷걸이에서 내려 방바닥에 던졌다. 너무 낡은 한 두 가지는 헌 옷 수거함으로, 어떤 옷들은 세탁소로, 그리고 나머지는 대충 뭉쳐서 빨래통에 옮겨 담으려고 했다. 바닥에 던져둔 도톰한 셔츠 한 장을 주우려 허리를 굽히는데 갑자기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오고 말았다. 아, 디스크 파열이로구나 하고 직감했다. 목이며 어깨, 허리가 아픈 지 오래라 이런저런 의사분들의 유튜브 영상을 많이 봐왔다. 허리를 삐끗했다는 건 추간판 탈출증, 다시 말해 디스크 탈출 혹은 파열에 지나지 않는 얘기라고들 했다. 하필이면 평생 그토록 싫어하던 운동을 제일 열심히 하던 기간에 사소한 일로 허리를 삐끗해서 며칠간 누워있어야 했다는 게 짜증이 좀 났다. 모르긴 몰라도 악기를 붙잡고 보낸 오랜 시간의 결국 내 몸을 상하게 한 결과였을 것이다. 


  악기를 하다 보면 온몸에 지속적인 무리를 주기 마련이다. 기타건 베이스건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연주 자세가 비대칭이다. 한쪽 어깨가 올라가고 다른 쪽 어깨는 내려가기 쉽다.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허리는 구부정해진다. 그리고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스트랩으로 한 어깨에 걸친 무게는 몇 킬로그램이고 이건 진짜 어쩔 수가 없다. 허리를 곧게 세우려고 일어서서 연습하면 악기의 무게를 온전히 어깨로 받아야 한다. 몇 시간씩 몇 년이고 연습을 지속하면 몸이 당해낼 길이 없다.


  게다가 연습이 아닌 연주를 할 때라면 내 자세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무대 위에서 자세는 습관의 영역, 무의식의 세계 안에 있을 뿐이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자세는 엉망인 채로 음악에 집중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대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리의 변화를 듣는다. 드럼의 연주에서 자잘하게 쪼개진 작은 박자와 그것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큰 박자를 듣고 느낀다. 그루브는 심장박동처럼 벅차게 느껴지기도 하고 거대한 바다의 파도 같이 압도적이기도 하다. 피아노가, 기타가 연주하는 화성은 사실적이기도 하다. 악보에 적힌 소리가 정직하고 정확하게 내 귀에 들려온다. 하지만 알 듯 말 듯 한 소리가 덧입혀지기도 한다. 가끔씩은 추상적인 소리를 내는 연주자와 함께할 때도 있다. 대치될 수 없는 이 현재의 시점에 그들의 세계에서는 악보 위에 적힌 씨 메이저 쎄븐이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솔로 주자는 즉흥연주를 몰아치고 있다. 내가 알아듣고 싶은 소리의 세계는 끝이 없고 내 귀와 뇌가 처리해 낼 수 있는 음악 정보의 양과 속도는 지극히 모자란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허리를 바로 세우고 있는지, 양쪽 어깨의 높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뜻이다.  


  그 와중에 종종 이 음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각 악기의 리듬이 걸리적거리기도 한다. 음악적인 감정이 잘 쌓여가지 않는다. 그럴 때면 제법 힘이 든다. 뭔가 뻑뻑한 느낌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덜 마른 시멘트 바닥에 트럭을 몰고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표현했었다. 앞으로 잘 안 나가는 느낌이거나 너무 무겁기만 한 느낌이 있다. 보통 그루브가 잘 형성되지 않을 때 그렇다.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다 같이 제법 집중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연주하며 두어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오늘 뭘 한 거지? 하는 생각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쏟아지는 날이 적지 않다, 사실은.


  키쓰 자렛은(이제 더이상 과거와 같은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이렇게 말했었다. 자기는 클래식 음악을 녹음하고 연주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진정 즉흥연주가라는 것, 재즈 연주자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재즈 연주자는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고 내려올 때 그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내려오게 된다고 말이다.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어봤었다. 과연 그런가, 나도 그런가 하고 말이다.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끝이 보이는 상태, 그리고 무대에 올라 그 예정된 결말을 확인하는 것, 역시나 그런 거였어, 별 것 없었잖아, 하는 그런 경험의 누적 같은 것 말이다. 드러머는 여전히 발라드를 지겨워할 것이며, 적당하게 달리기 좋은 템포에서는 무조건 불타오를 것이다. 솔로 주자는 내가 어떻게 연주하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가 코드 진행이며 박자를 말아먹지 않아서 자신이 솔로하기 좋은 배경화면을 잘 깔아준다는 전제하에서(그들은 언제나 내가 틀릴 때에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강렬한 시선의 대상은 지판이고 건반이며 악보이다).


  서로에 대한 기대감 따위는 딱히 크지 않다. 이미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같이 연주한 상대라 오늘 어떤 연주가 일어날 것인지 다 안다. 우리 모두는 제한된 역량을 가진 이들이다. 젊은 시절 듣고 꿈꾸던 음반 속의 연주가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으리란 희망 따위는 조금씩 접어두었다. 그런 건 연습실 구석에 처박아둔 지 오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즐거우면 된다. 어차피 즐겁자고 시작한 음악 아닌가, 관객은 어차피 못 알아들어하고 말이다. 그런 시큰둥함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러니 무대를 내려올 때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건 재즈 뮤지션만이 누리는 경험이에요, 하는 키쓰 자렛의 얘기를 잘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런 느낌이겠구나 하고 막연하게나마 추측해 본다. 


  어쨌건 식단 관리를 시작했다. 운동은 한동안 쉬어야겠으니 그동안 식단이나 조절해서 살을 빼 보자, 기본적인 신진대사는 지난 세 달간의 운동으로 제법 활성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식단을 조절하면 금방 살이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 몸이 여기에는 정직하게 반응했다. 다행히도. 


  조던 피터슨이 그렇게 말 한 모양인데, 일단 방부터 치우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게 하는 시작이라는 뜻이리라(사실 그런 동기부여 영상이나 자기 관리 관련된 책을 즐겨보지 않는다, 뭔가 훈계 듣는 기분이 들어서 유쾌하지 않다). 마이클 잭슨은 I’m starting with the man in the mirror,라고 노래했다. 거울 속에 서있는 저 사람부터가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그가 훨씬 더 마음에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긴 심리학자와 팝의 황제 사이의 대결이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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