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창 Jan 03. 2024

Getting Older

Billie Eilish [Happier Than Ever]




미장원을 옮기려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걸어서 이삼십 분 정도 안에 있었으면 좋겠고(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데 평소에는 악기 때문에 늘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만이라도 도로 위의 신경전에서 벗어나있고 싶다), 가격도 적당했었으면 했다. 남성 전용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남자 머리를 신경 써서 다루는 곳이기를 바랐다. 한번 정하면 좀 불만이 있어도 매달 계속 갈게 뻔했다. 원체 낯선 곳,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편이니까. 요즘은 이런 성격을 '저는 완전 I 에요'라고 말하면 다들 끄덕여주니까 그런 건 좀 쉬워졌다. 


  집에서 삼십 분 정도를 꼬박 걸어야 하는 그 미장원 역시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아무리 봐도 부원장이라는 분의 솜씨가 그렇게 미덥지 않았고, 원장님에게 가면 이만 원인가 더 내야 했는데 그건 또 싫었다), 그 이전에 시도해 봤던 꽤 잘되는 남성 전용 미장원은 더 불편했어서 이 정도면 대충 정착해버릴까 싶었다. 짧은 시간 내에 비즈니스가 확 성장한 곳에서 종종 느껴지는 위화감 같은 게 있었다. 다들 시크함을 유지한 만큼 친절한데, 그 안에 내가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명확하게 느껴지는 그런 경험이었다. A부터 Z까지 잘 훈련된 직원들 안에 내가 들어가 매뉴얼대로 다뤄지는 느낌이랄까. 


  사실 그 이전에 꽤 오래 다닌 미장원도 그냥 그냥 그랬었는데, 규모가 작은 곳이라 그런지 내가 인격이 아니라 제품이 된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듯하다. 다만 짧은 기간에 두 번 가격이 올라가는 걸 보고는 그냥 다니는 게 뭔가 바보스러운 느낌이 들어 몇 년 만에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한 거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것뿐인데, 하면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두세 번 이용해 봤던 미장원 얘기다. 논현동이었을까, 행정구역까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략 그런 지역에 있던 작은 곳이다. 청담동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순간 서로의 기대치가 변한다. 그래도 청담동 미장원인데 이 정도는 내셔야죠, 하는 사장님의 생각과 그래도 청담동 미장원인데 이 정도는 해주셔야죠, 하는 소비자의 기대가 팽팽하게 맞닿는다. 하지만 논현동 골목이면 조금 얘기가 달라진다. 그래도 강남인데 청담동만큼은 아니어도 이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길 하나만 건너면 그 동네잖아요, 하는 생각과 그럴 거면 그냥 청담동을 가고 말지 왜 이쪽으로 건너왔겠어요? 하는 주장이 만나는 곳이다. 심하게 비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당히 트렌디함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곳을 찾아 걱정 없이 나를 -내 스타일을- 맡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얘기는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명확한 차이, 그걸 매 순간마다 느낄 수 있었다. 종종 많은 걸 그냥 넘겨짚는 건 아닐까 하고 반문해 보기는 하지만, 쓸데없이 예민한 감각 탓에 행동 뒤의 마음을 읽어내곤 한다. 아주 좋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여러가지 면에서.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차병원 사거리까지 가벼운 오르막을 걸을 때 처음 듣게 된 Billie Eilish의 음악은 그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출발은 James Blake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플 뮤직의 고음질 서비스를 이것저것 눌러보던 중이었다. 빌리 아일리쉬? 들어본 이름인데, 하고 그녀의 음반 [Happier Than Ever]를 클릭했다. 그런 제목이라면 일단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반어법이라 가정하고 받아들인다.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이란 타이틀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단단히 잘못된 걸까? 


  지금까지도 빌리의 노래 -피니어스와 빌리의 음악이라고 하자-가 이만큼이나 세대가 떨어진 내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논현동 근처의 언덕길을 오르며 들었던 빌리 아일리쉬의 노래는 늘상 재즈에 지쳐있던 내게 위안 같은 그 무엇이었다. [Happier Than Ever]라는 음반 제목을 보자 나도 모르게 Oh, really? 하고 내뱉었다. 너무도 젊은 목소리로 I'm getting older, 하고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 이내 '고작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네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나 해?' 하며 튕겨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나를 사로잡고야 말았다.




  





   

https://youtu.be/7AS9r_E0PY4?si=tiM6icJAjtgzsKzw

피니어스와 빌리가 자기 자신됨을 꾸준히 파고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Flor De Li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