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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Jan 02. 2024

Flor De Lis

Djavan/Gretchen Parlato




신발이건 가방이건 마찬가지인데, 세상에서 나만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몇몇의 취향을 공유하는 소수만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 것이 있다. 듣다 보면 가끔씩 그런 음악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오직 나만 알고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 곡을 만든 이는 왜 나의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는 거지, 하면서 좌절할 테니까. 저 멀리 대한민국에서 한 중년 남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을 테고, 설령 알게 된다고 해도 큰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흔해지지만 않는 정도면 적당하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어쩌다가 겨우 만나게 될 때면 느슨한 연대의식 같은 게 생기기도 한다. 


  내가 태어난 해에(대단한 의미부여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브라질 땅에서 만들어진 이 노래가 내 마음에 와닿기까지는 긴 여행을 필요로 했다. 자반의 곡이 그레첸 팔라토라는 재즈 가수에 의해 새로 불려지기까지 삼십 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또 몇 년이 지나서야 애플뮤직을 통해 늘 궁금하던 그레첸의 노래를 들어볼 수가 있었다. 브라질 음악으로 가득했던 데뷔 앨범 제목은 그저 그녀의 이름 그대로 Gretchen Parlato였다. 


  남부터미널에서 천안으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타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버스의 왼편 창가에 앉은 채 머리를 슬쩍 기대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막 남부순환로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올라타려는 찰나에 앨범의 두 번째 곡이 시작되었고 점점 숨이 멎는 듯했다. 


  기타와 듀엣으로 시작하는 부분에서부터 둘의 호흡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끝없는 싱코페이션의 향연 위에 둥실 떠다니듯 하는 그레첸의 목소리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곡의 화성진행은 그리 난해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색채감이 있고 슬쩍 예상을 벗어나는 소리들을 끼워둔 상태였다. 전혀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포르투갈어이다) 가사의 1절을 마치고서야 여러 개의 브라질리언 타악기로 구성된 리듬섹션이 등장하고 2절을 이어 불렀다. 수르도와 빤데이루, 땀보림에 구이까가지 들린다. 출렁이는 느낌이 너무도 세련되었다. 이내 애런 팍스는 싱글노트로만 피아노 솔로를 연주한다. 그 솔로 위에 그녀의 스캣이 더빙되어 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이 테이크를 마치고는 애런 팍스의 솔로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피아노 솔로를 익혀서 오버더빙한 건 아니냐고. 맞다고 얘기해 준다면 제법 기분이 좋을 것만 같다. 그녀도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 테니. 


  그렇게 수없이 반복해서 듣다가 어느 늦은 밤, 원곡을 찾아 들어보았다. Djavan, 브라질의 국민가수쯤 되는 모양이었다. 라이브 공연 영상을 보니 말도 안 되게 거대한 야외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죄다 떼창을 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듣기 시작한 이 곡을 새벽녘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면서 이 곡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바람은 무너져버렸고, 나는 제법 슬퍼졌다. 


  해가 갈수록 그레첸 팔라토는 제법 유명한 재즈 가수로 성장해 나갔고, 국내의 여성 재즈 가수들도 이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날그날 모여든 멤버들은 긱 시작 전 십오 분쯤 전에 악보를 받아 들고는 눈으로 대충 훑어본다. '이 곡은 보사노바예요, 인트로는 악보대로 해주시면 되구요, 마지막 엔딩은 뒤에 여덟 마디를 반복하다가 제가 싸인을 드리면 코다 타고 넘어가 주시면 됩니다....' 같은 설명을 듣는다. 다들 별다른 감흥이나 기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멤버들끼리 좀 친한 사이라면 이런저런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는 무대에 올라 적당히 이 곡을 연주한다. 그러면 이 곡은 찬란하던 빛을 절반 이상 잃고는 송 폼이 좀 길고 코드 진행이 약간 특이할 뿐인, 또 하나의 고만고만한 보사노바곡이 된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뜻 모를 포르투갈어 가사를 따라 읽고 또 읽어보다가 기어이 번역기를 돌려가며 이해하려고 애쓸 뿐이다. 이 아름다운 곡의 가사에는 자그마한 희망의 조각조차 담겨있지 않다. 그저 사랑을 잃은 자의 비통함만 노래할 뿐이다.  


 

Valei-me, Deus                                                                    

É o fim do nosso amor                                                          

Perdoa, por favor                                                                  

Eu sei que o erro aconteceu                                                

Mas não sei o que fez                                                            

Tudo mudar de vez                                                                

Onde foi que eu errei?                                                        

Eu só sei que amei 

Que amei, que amei, que amei         


Será talvez                                                                                

Que minha ilusão

Foi dar meu coração

Com toda força

Pra essa moça

Me fazer feliz

E o destino não quis

Me ver como raiz

De uma flor de lis

E foi assim que eu vi

Nosso amor na poeira, poeira

Morto na beleza fria de Maria


E o meu jardim da vida

Ressecou, morreu

Do pé que brotou

Maria Nem margarida nasceu


E o meu jardim da vida

Ressecou, morreu

Do pé que brotou

Maria Nem margarida nasceu







https://youtu.be/014cMNPu9qM?si=nfUqb2c4QRswqMdP   

이 곡 <Flor De Lis>를 처음 알게 되었던 그레첸 팔라토의 버전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https://youtu.be/_kfDbyZaSmo?si=o5tjYnh5ZaV5LtGY

하지만 자신의 언어로 노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의 곡이라 그런 걸까? Djavan에게는 분명 특별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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