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 재즈 연주자의 기쁨과 슬픔
*이번 제목은 장류진 작가의 작품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차용해왔다.
-재즈가 바깥의 음악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바깥의 음악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는 비주류의 음악. 인기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 이런 걸 좋아한다며 손에 꼽지는 않을 음악. 대중적 인기를 원하는 연주자와 인기나 인지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예술을 숭배하는 연주자의 표준편차가 몹시 커서 시장에 비해 다양성이 풍부한 음악. 그래서 재즈란 이런 것이다,라고 꼬집어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음악.
혹시 덧붙일 것이 또 있을까. 어쨌거나 재즈는 연주자들의 음악이다. 재즈 스탠더드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된 애욕은 곡을 완벽히 장악하고 새롭게 꾸며 마침내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이상으로 승화되어가며, 가사를 외우고 화성을 분석하고, 어떤 리듬을 사용할지, 어떤 스케일을 사용할지, 그 스케일을 잘라서 다른 것과 합치거나 혹은 시작점을 재지정할 것인지에 대해 쏟는 시간의 양이 점점 늘어간다. 노래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악기처럼 다루어 스캣을 하고 다양한 소리를 내는 데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니 재즈 뮤지션들은 단순히 연주를 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경지에 올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원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들에 수당이 붙지는 않는다. 제가 이번 연주에서 새로운 스케일을 연주했습니다, 전에 없던 리듬을 발견해 즉흥연주 속에 녹여냈습니다,라고 해서 국가에서 지원금을 준다거나, 그러한 사실의 증명서류나 증거자료 제출 시 복지혜택 제공 등의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 바라는 것도 아니다. 심야 시간대에 볼 수 있는 음악방송에서 손이라도 잠깐 화면에 나왔다 사라지는 세션들은 그래도 대중음악 시장에서 나름의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고, 많은 수의 재즈 뮤지션은 소규모의 긱과 기획공연, 그들처럼 되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수입을 얻는다. 고정된 일자리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니, 재즈는 음악세계에서도 바깥 즈음에 위치하며-아이러니한 사실은, 재즈 뮤지션은 여기에 대해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쉬울 수는 있어도-남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생업의 경제적 효용 측면에서도 가성비가 극도로 나쁜 셈이다. 우리는 왜 이런 음악을 하게 됐을까. 그러나 이 말이 후회나 한탄은 아니다. 그저 질문일 뿐이다.
-아내와 동네에 있는 바이닐 샵을 발견해 방문했다. 특별히 사고 싶은 앨범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사장님의 언변에 귀가 녹은 두 사람은 일본에서 프레싱한 케니 드류의 트리오 앨범을 사게 되고 말았다. 내가 재즈 연주자란 걸 밝히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사장님은 가게 안에 있는 재즈 명반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주시는 호의를 보여주셨고, 나는 가까스로 칙 코리아의 <Now He Sings, Now He Sobs>를 집어 들뻔한 우리에게 제지를 가할 수 있었다.
''이건 여보에게 좀 어려울 수 있을 거야. 일단 스트리밍으로 들어보고 맘에 들면 다시 와서 사자.’'
아내는 아쉬운 듯 손을 거두었다. 그 앨범이 얼마나 명반인지 설명하는 사장님의 어투에는 대선을 치르는 후보자의 자기 홍보에 가까운 확신이 깃들여 있어서 유혹을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결국 케니 드류의 앨범 한 장을 바이닐 샵 로고가 그려진 봉투에 담아 달랑달랑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였다. 날이 덥고 습했으며, 저녁에 근접한 시간대가 햇살의 명도와 채도 모두를 깎아내리는 중이었다. 아내가 방금 산 바이닐을 들어 보이며 내게 물었다.
'‘여기 있는 곡들은 유명한 곡이야?’'
''그렇지. 대부분의 재즈 연주자들은 외우고 다니는 곡들이지.''
''그걸 외우고 다녀야 해?''
''응. 그런 걸 재즈 스탠더드라고 부르는데 보통 2-300곡은 외우고 있어야 연주하기도 좋고 잼도 할 수 있고.''
''여보도 외우고 있어? 200곡 다 칠 수 있어?''
''아마? 근데 제목을 알려줘야 칠 수 있을 거야. 막상 아는 곡들을 쭉 다 쳐보려고 하면 잘 안 떠오르더라고.''
그 후로도 나는 아내의 관용과 배려, 인내심에 기대어 틴팬 앨리와 미국의 고전 뮤지컬, 재즈 스탠더드는 어떻게 스탠더드가 됐나에 대해 다소 지루한 설명을 펼쳐놓았고 아내는 어쩐지 나를 불쌍한 듯,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잠시 쳐다보았다. 아내는 알까. 내가 지금도 연습실에서 스탠더드를 '외우는 종류'의 일들을 하는 중이고,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라는 걸.
턴테이블에 새로 산 케니 드류의 앨범을 걸쳐놓고, 한 장의 친구가 더 늘어난 바이닐 수납장을 보다가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를 보고 이유를 알 수 없이 흠칫했다. 예전에 학교에서 재즈사에 대한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이 앨범에 대해 해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다소 오래되긴 했어도 생각날 때마다 들으면 어떤 새로운 영감을 전해준다' 라고. 나는 그 말씀에 매우 동감하면서도 슬펐다. 정확한 이유를 진단할 수는 없었다. 그 앨범과 나 사이에는 거리를 잴 수 없는 아주 먼 공간이, 텅 빈 공간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절대로 내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경지, 공간, 세계로서 마일즈 데이비스가 트럼펫을 입술에 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나아갈 길에 대한 힌트를 얻는 중이다. 그 사실이 슬픔이다. 나는 그 음악과 아주 가까우나 아주 멀다.
그날 아내와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며 케니 드류의 앨범을 반복해 들었다. 비밥이었고, 케니의 선율이 명쾌했다.
-나는 재즈 피아노를 치지만 그렇게 인지도 있는 연주자가 아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아무도 모르는 재즈 피아니스트 쪽이 맞다. 그 사실이 안타깝거나 부끄럽지는 않다. 오히려 나의 이러한 상태에 흥미가 생긴다. 무명의 연주자로 살아가는 법. 또는 무명의 인간으로 삶을 유지해 나가는 법 등등에 대해서다.
더군다나 두 장의 앨범을 내고 나서는 나의 부족함에 대해 뼈저리게 절감하고 난 터라, 해외의 유명한 연주자뿐만 아니라 국내의 실력 있는 이들과 견주어봐도 내 솜씨가 형편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열심히 해보아도 잘 안될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왜 나는 연습하는가. 매일매일. 단 하루라도 연습을 빼먹으면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일종의 1인칭 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나에게 해냈다,라고 칭찬해 주는 것이 유일한 보상인 게임. 서비스의 제공자도 수혜자도 동일하므로 불만이 적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 한 빠져나갈 수 없는 시스템이다. 더군다나 무명과 익명이 익숙한 나에게 ‘내가 나의 수고를 알아준다’는 심리적 알고리즘은 내면으로만 파고들 수 있는 무한동력을 제공하므로 나는 어찌 보면 꽤나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뮤지션들이 그랬듯 어쨌거나 무명에도 유명에도 I don’t care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