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성장로드맵 두 번째 이야기
1장에서 엔지니어가 타 분야의 사고능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뤘다. 골자는 ‘공학적 사고에만 머물면 성장할 수 없으니, 타 분야의 지식을 쌓아 시너지를 내는 엔지니어로 성장해보자.’이다. 그렇다. 타 분야와 융합을 통해 종합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면, 보다 나은 엔지니어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장에서는 “성장”에 대한 키워드만 다뤘지, “되는 법”에 대해 다루지 않았다. 성장하는 엔지니어가 되기 전에, 엔지니어가 먼저 돼야 함에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엔지니어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먼저 자격을 받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봤다. 한국에서는 주로 기술기사를 취득하거나, 공학 학위를 받아 엔지니어의 자격을 얻는다. 사실 취득 방법론에 대해서는 고민할 거리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대학에 입학하면 당연한 수순으로 밟아가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정말 모르는 분이 계신다 해도, 학원이나 컨설팅사의 자세한 커리큘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더욱이 문제 되지 않는다. 어떻게, 빠르게, 쉽게 자격을 취득하는 방법은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격증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물론 자격증이나 대학의 커리큘럼을 설계한 사람들은 충분조건이길 바랬겠지만 말이다. 자격이 있더라도 엔지니어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종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능력이 있기에 엔지니어로서 일할 자격을 주는가?”라는 질문은 학부 1학년 교양에서 다뤄지고 잊혀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질문임에도 자격을 취득하는데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취득 과정 중 자연스레 따라오리란 믿음만 남아 있는 듯하다.
어떤 능력이 있길래 엔지니어 자격을 주는가?
하지만 엔지니어로서 주도적(의식적)인 성장을 꾀하려 하니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본분을 고민 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가적인 능력이 아무리 좋다 해도 엔지니어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빈수레가 요란한 소리만 내는 꼴이란 생각 때문이다.
엔지니어는 어떤 직업인가? 과학/수학적 지식과 기술을 실용적인 산업적 공정에 새로이 적용해내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과학자와 기술자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엔지니어는 과학자들이 발견한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실용적 목적에 맞게 산업 공정 방법론을 개발한다. 그리고 기술자들은 개발된 방법론을 가지고 실제로 제작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엔지니어는 이상과 현실을 연결해주는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한다. 대신, 매력적인 만큼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는 애매한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이론이면 이론(과학자), 기술이면 기술(기술자)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기술을 폭넓게 알아야 하는 포지션이다. 한쪽에만 치우치게 되면, 현실감 없는 엔지니어가 되거나 창의력 없는 엔지니어로 전락해버린다. 매력적인 엔지니어로 남으려면, 이론과 기술 모두 섭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기술에 대한 책임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과학 이론에 특정 가치를 부여해 실현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부하지만, 다이너마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다이너마이트는 터널을 뚫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사람을 사살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엔지니어들은 다이너마이트라는 기술을 가지고 건설적/군사적 목적을 실현하도록 기술개발을 했다. 만약 무기를 만든 엔지니어가 그 기술의 의미를 알지 못한체 개발하였다면, 후에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려면 기술을 판단할 가치판단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겠다(인문학적 소양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잘못된 설계도 막대한 책임을 불러온다. 추상적인 개념을 실현시키다 보니 생각하지 못한 점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는 곧 대량의 불량품으로 막대한 손실을 일으키거나 최악의 경우 인명피해까지 일으킬 수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첫째, 엔지니어는 빠르게 발전하는 이론과 기술을 빠르게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개발할 기술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 중 더 엔지니어의 본분에 가까운 것을 꼽으라면 전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첫 째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보았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엔지니어의 성장단계에서 첫 단계는 I형 엔지니어로, 자신의 분야에 정통한 엔지니어이다. 한 우물을 판 형상을 I에 빗댄 것이다. 즉, 자신의 전공분야를 정통하지 않고서야 다음단계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성장단계는 타 분야의 지식을 공학문제에 얼마만큼 활용할 수 있는가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전문분야를 잘 모른다면 이를 배우느냐 타분야 지식이 섞일 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여기 모순점이 있다. 빠르게 새로운 과학기술과 이론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전문분야를 정통하는 것이 가능한가 말이다. 2010s에 접어들어 AI가 흥행하니 AI를 배우기 바쁜 엔지니어들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시니어 엔지니어들도 AI를 배우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 어느 타이밍에 전공분야를 정통했다 말할 수 있고, 언제 성장을 꾀하러 타 분야를 공부하러 갈야 할까? 끊임없이 전문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굳이 끼워 맞추다 보니 이렇게 답을 내렸다. 새로운 기술과 이론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때라고 하고 싶다. 모든 이론과 기술을 다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공대생답게 말하면, 정통의 기준으로 한 값을 정하는 드리클레(Dirichlet) 경계로는 정의할 수 없었으며, 계속 발전한다는 변화율을 경계로 삼는 노이만(Neumann) 조건으로 정의해야 했다.
교육학적으로도 맞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관찰 시야가 넓어지고 이해도가 깊어져 새로운 개념을 마주한다 해도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비교적 타 분야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리라. (그러고 보니 자격증을 설계한 분들이 이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반경을 가졌는가 시험하기 위해 기초과목들에 대한 시험을 보니까) 자격을 받기 위해 기초 과목들을 섭렵했다면, 다음 과제는 자신의 분야에서 현재 유행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따라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실(본분)을 다질 타이밍이다. 그리고 최전방의 기술을 따라잡았다면, 새로운 기술들은 예의 주시하면서 타 분야를 섭렵하러 떠나자!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엔지니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