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성장로드맵 세 번째 이야기
빛을 내는 엔지니어는 커뮤니케이션에 능하다.
“이게 될 리가 없는데 자꾸 해 보라시네”
“말씀하신 방법보다는 이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고 좋은데..”
“기술을 이해도 못하고 있어 보이는 거만 하라고 하네, 참!”
“지금 방식에 문제가 많아서 바꿔야 한다니까, 이해를 왜 못하지?!”
엔지니어로서 업무를 보다 보면, 타 분야의 전문가들과 의견 조율하는 자리가 많이 있다. 적절한 기술개발(혹은 경영) 방향을 정하기 위해 각기 전공의 관점을 공유하는 자리이며, 결정권자들은 공유된 의견을 기반으로 팀을 이끌어 간다. 엔지니어들은 주로 기술의 정확도와 효율성, 그리고 혁신 측면의 대변인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엔지니어들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지 않고 경영진들의 논리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들의 습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엔지니어란 직업 특성상 사실과 정확한 수치에 입각한 설명이 몸에 배어 있다(빛을 내는 엔지니어 참고). 그렇기 때문에 공학적 논리를 포장하여 공감을 이끌어 낸다던가, 기술을 추상화하여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데 미숙한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수식과 그래프로 꽉 찬 엔지니어의 언어가 경영진 설득에 걸림돌인 것은 분명하다. 단례로, 정확도가 2배 좋아진 혁신기술을 사용하자고 엔지니어가 주장한다고 해보자. 만약 기존 기술도 충분한 정확도를 가졌다면, 모든 생산설비를 다시 제작하면서 까지 혁신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엔지니어들은 이 정도로 멍청하진 않지만, 이런 류의 이슈가 자주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나 드라마 속의 엔지니어들 또한 대화(설득, 협상)에 미숙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어려운 용어를 섞어 쓰는 괴짜이며, 일방적인 요구에 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이다. 협업보다는 일방향 조력자인 경우가 많다. 한 드라마에서는 엔지니어가 기술은 탁월하나 숫기가 없어 실패하고,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CEO와 함께 팀을 이루게 되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엔지니어 클리셰의 공통점은 대화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들이 이러한 각본에 공감한다. 그들 주변의 엔지니어들 또한 영상매체가 그리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실제로 필자를 포함한 주변의 엔지니어들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는 맞다. 특히 기술개발에 열정적인 찐 엔지니어일수록 기술의 정확도나 효율성 그리고 혁신에 열광하는데, 그만큼 명확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일이 없고, 명확한 것에는 융통성이 없는 경우가 꽤 있다.
엔지니어가 대화에 미숙해 기술적 의견이 원활하게 공유되지 못하면, 기술 경영에 있어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주제이다. 안전사고로 이어지거나, 막대한 추가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난다면, 경영진들은 엔지니어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엔지니어 본인은 의사소통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해 억울해하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기술에 의구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 기술도 전공분야만큼 익혀둬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나사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이다. 7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던 챌린저호는 발사된 지 73초 만에 폭발했다. 7명 모두가 사망하고, 4886억 원에 달하는 금전적 손실도 입었다. 혹 이런 대참사가 일어난 챌린저호의 폭발을 예견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겠는가? 보졸리라는 30대 엔지니어였다. 그는 사고의 원인이었던 고체연료 로켓 추진체(SRB) 설계담당으로서 발사 1년 전 이미 이 참사를 예견했다. 당연히 발사를 막으려 노력했으며,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엔지니어 출신의 결정권자들도 다수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중대한 책임은 결정권자에게 있지만, 엔지니어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보졸리가 발사 일정을 맞추는데 급급했던 결정권자들을 설득하고 마음을 돌렸다면 어땠을까? (사실 공학자들의 판단으로 인해 인명피해를 예방하고 비용을 줄이는 경우가 더 많다!)
엔지니어의 논리는 효율과 정확도 측면에서 견고하다. 보졸리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보고서에 수치화되어 탄탄하게 서있는 논리는 전문분야의 권위자라 해도 쉽게 반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 언정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정권자들이 더 중요시 여겼던 것(비용/일정 등)에 따라 발사가 진행되었다.
엔지니어들끼리만 모여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위와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서로의 언어가 같아 반박과 설득이 걸림돌 없이 잘 이뤄질 테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의 업무환경은 그렇지 않다. 타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그럼 엔지니어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진부한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마인드 셋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공학적 판단을 이해시킨다는 마인드 셋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전공지식이 아닌 공학적 “판단”을 충분히 납득 가도록 전달해야 한다.
첫 째, 청자의 직군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엔지니어가 대상이 아닐 때는 더욱 중요하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자리이면 자리일수록 청자의 세계관을 공부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주제에 공감하며, 어떤 언어에 익숙한지 말이다. (사실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주 접하는 직군이 있을 테니 말이다.) 처음 대해보는 직군을 만날 때가 난처한 상황인데, 설상가상 이런 경우는 중요한 PT자리인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런 자리가 예비되어 있다면, 그들이 몸담은 분야의 가장 얇고 읽기 쉬운 책을 골라 읽어보자. 보통 2-3시간 만에 그들의 언어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다. 여건이 안된다면 유튜브나 블로그를 찾아봐도 좋다. 더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 처음 접한 책이나 영상/블로그 글에서 소개된 매체를 계속해서 찾아보자.
둘째, 적절한 시각 자료를 만들자.
엔지니어끼리의 대화 수단인 무차원화 그래프나 오차율 그래프는 잠시 넣어두자. 대신 직관적인 자료를 사용하자. 정확도가 개선되었음을 설명하고 싶다면, 정확도를 비교하지 말고 정확도가 낮을 때 생기는 문제를 설명하고 이를 해결 가능하다는 극적 예로 설명해보자. 알아듣기 힘든 용어를 서술하지 말고, 픽토그램의 단순한 형상으로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것이 오히려 낫다.
셋째, 의도적인 사고 흐름 만들어 내자.
청자가 정보전달을 받아들이는 순서를 전략적으로 짜면 좋다. 일부러 궁금증을 일으키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해주는 식. 피티 초반에 그림이나 예시가 많은 이유이다. 시각적인 자극으로 집중도를 높이고 “그래서 뭐?”라는 식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공학적 추론과정을 설명만 하지 말고, 의도적으로 질문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생각의 흐름을 유도해보자. 만약 청자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상황이면 더욱 도움이 된다. 멍청한, 당연한 질문이라도 청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집중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돌아 돌아왔지만 결국 엔지니어들은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타 분야 전공자들은 기술적 효율과 정확도만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엔지니語말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연습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