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성장로드맵 네 번째 이야기
/ 엔지니어 파워업 - 강태식 / 후기 /
책의 후기만 원하시면 주절주절은 넘겨주세요.
특별히 창의적이지도 않고 좋은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1인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 생겼는가 하니 비교적 최근이다. 그전까지는 내 길도 아닐뿐더러 그런 사람들을 봐도 부러운 마음이 없었다. 그땐 왜 사업/창업에 대한 마음이 없었는가 하니, 어려서부터 세상모르고 열심히만 하는 우직한 편에 속했던 탓이었다. 내 삶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정해진 길이나 어른들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따랐다. 이런 태도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시너지를 내어 수동적으로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목표를 정하는 방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도입부는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잘 살고 있다는 기승전결 전개가 있어야 읽을 맛이 나는데, 사실 지금도 주도적으로 사는 삶은 매우 어려워한다. 대신, 배우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학교-대학원-회사생활에 걸쳐 많은 멘토들과 배울 점 많은 주변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리고 배움의 첫 번째 열매가 5개월 전 맺혔다.
5개월 전 이직을 했다. 주도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움직여본 첫 번째 경험이다. 물론 첫 경험답게 미흡한 정보와 익숙하지 않은 메타인지로 인해 그 결과는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밤을 새우도록 집중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금의 회사를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금전적인 문제나 지리적 위치 그리고 그다음 이어나갈 커리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만족감이 떨어졌다. 자기 주도적으로 세운 첫 목표의 열매가 달달하지는 못해서 앞으로 더 소극적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 동시에, 처음 내 맘 가는 데로 해본 거니까 배움의 뜻이 깊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있다.
어쨌든 이직을 한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 아니 일이 끝나고 집에서도 밤새서 할 수 있는 이 나의 전문분야의 스킬이 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전 회사에서만 해도 워라벨을 중시 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내고, 빨리 집에 가기 급급했는데, 지금은 집에서 더 공부한다. 미숙했지만 내가 분명하게 원하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아주 일부만 고려한 편향된 목표였지만, 그 목표를 이뤄냈다. 그리고 여기로부터 파생되어 지금 내가 하는 이 “밤을 새워서 할 수 있는 일”로 언젠가 불투명한 미래를 투명하고 명확하게 만들 상상까지 하게 되었으니, 열매가 달달하진 않지만 먹을만하고 크기도 꽤 컸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명확한 미래 계획 중 하나가 1인 기업이 된 것이다.
이렇게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를 발견하면서 1인 기업에 대한 관심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의 열정은 돈과는 멀어 보였다. 나의 열정은 제품을 때다 파는 수완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해내는 창의력과는 멀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품과 아이디어를 고안해내면 된다지만, 지금 당장 내가 가진 열정과 능력이 바로 수익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계속 능력/자기 계발만 하다가 끝날 거라는 생각에 다시 거창한 무언가를 배우거나 생각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학 연구자가 1인 기업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태식 작가님의 “엔지니어 파워업”이라는 책을 만났다. 작가님은 소음/진동 분석을 하시고 개선안을 제시해주는 용역 사업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무심코 고른 이 책(밀리의 서재 서비스 도서)의 작가분이 나와 비슷한 CAE분석을 하고 계신 분인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1인으로 엔지니어링의 용역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분은 기계 쪽이긴 하시지만, 내 전공인 토목 쪽은 규모가 매우 커서 해석이 오래 걸리고 실험도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기 마련이라, 지금까지는 1인 기업 비즈니스 모델이 있으리라곤 더더욱 생각 못했다. 그런데 생각하다 보니 내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분도 회사원일 뿐 1인 기업이 아니거니와, 나와는 거리가 먼 전공이기에 별 생각 안 들었던 것 같다. 그분은 병렬컴퓨팅을 하시다 퇴사하신 분이었는데, 회사에서 병렬컴퓨팅 연구가 필요하자 그분에게 개인적으로 용역으로 맡겼다. 이는 작가님도 그랬다고 하셨다. 회사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잘 증명하고 나오면 그게 자신의 사업의 연결점이 된다고.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며 연구라는 직무 속에도 1인 사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IT 창업이 흥행해서일까, 사실 앞으로의 창업은 IT기반이어야 한다는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게다가 수지-남주혁 주연의 스타트업 드라마도 재밌게 챙겨봤는데, 역시나 IT기반의 기술들이 소재였기에 색안경이 더 진해질 뿐이었다.
근데 이 책을 보면서 내 연구 분야에서도 비즈니스 모델만 잘 세우면 1인 기업, 창업이 못할 건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1) 작가님은 실무에 능통할 때가 퇴사 시점이라고 하셨다. 이 이후에는 반복적인 업무가 되고 회사에 남아있다면 그 능력을 남을 위해 돈을 버는 행위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한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재원 구매와, R&D 실무, 그리고 마무리를 하는 방법에 능통해졌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라고 하셨다.
(2) R&D 분야는 고객에게 무조건 충성하기보다는, 개선안을 알려주고 보다 나은 기술을 개발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 기술이나 실험 데이터로 소통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실무에 능한 결과를 보여준다면 큰 수완이나 서비스적인 측면이 부족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래도 있는 게 훨씬 좋다.)
(3) 전공보다는 어떤 일을 맡아서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하신다. 자신의 전공은 소음/진동 분야가 아니었지만 첫 직장에서 소음/진동 분야를 시작했고 운이 좋게도 그 이후 15년간 이 분야에 머물며 전문가가 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야로 먹고 사신다고.. 전공과 실무분야가 정확히 일치하면 베스트지만 다르다면 실무 경험을 사업과 연결시키는 것이 맞다. 실제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은 전공 지식과는 다르니까.
- 이제 실무 3년 차, 아니 이직을 해서 1년도 체 안 되는 실무경력이라, 아직 퇴사할 때는 아닌 것 같다.
(4) 1인 기업은 내 이름이 곳 회사여서 내 이름으로 책임을 묻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다. 회사에 속해 있다면 회사가 이를 커버해주지만 1인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작가님은 돈을 받는 입장에서 “을”임을 먼저 인정하는 대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을이 되겠다고 자신에게 “페르소나”를 입히셨다. 사업을 할 때는 내 이름이라기보다 000대표 000 로서의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가는 것이다. 갑으로 인정해주는 대신 갑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5) Win-Win 거래가 아니면 거래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것이 좋다고 하신다. 서로가 납득할만한 거래 내용이 아니면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거래를 하지 않으신단다.
누구나 세워놓은 틀 안에서 정해진 일을 하다 보면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실은, 나는 그런 삶이 그렇게 싫지는 않다. 크게 고민하며 살지 않아도 주어진 목표를 이뤄주기만 하면 돈을 주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해졌다. 1인 기업에 도전은 해봐야겠다고. 방금 말했듯이 남의 회사를 다니는 것이 답답하고 싫어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에 대한 책임과 삶은 개척해나가는 그 건강한 정신이 부러웠다. 그렇게 살고 싶다. 불확실함의 연속인 인생을 거대한 회사나 선임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그 불확실함의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