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리고티 <인간종에 대한 음모>
컬트 공포소설 작가 토머스 리고티의 고유한 공포 조성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독자로 하여금 픽션보다는 논픽션에 가까운 감상을 가지게 함으로써 실존적 공포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공포소설 매니아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동시에 ‘음모’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외면해왔던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며, 단순한 공포나 비관이 아닌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고찰을 제공한다.
37p. ‘일단 이정표 하나에 이르면, 우리는 다음 이정표를 향해 나아간다. 사실 좋든 싫든 끝이 있지만, 결코 끝나지 않을 듯 여겨지는 보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끝이 있음이 싫다는 걸 지나치게 의식하면, 당신은 스스로를 그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는 살 수 없지만 또한 그 의식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생물학적 역설로 간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있지만 살아 있지 않음으로써, 당신은 언데드나 인간 꼭두각시와 같은 곳에 자리하게 된다.‘
인간이 고통을 무시하고 삶을 긍정하는 과정에서 '살아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악몽‘이다. 주로 노르웨이 철학가 페테르 베셀 삽페의 <마지막 메시아> 등 여러 철학가의 저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죽음과 고통이 비관론이 아닌 맞닥뜨려야 할 인간의 현실이라고 주장하며, 인간이 목숨을 걸어 온 종의 번식과 수명의 연장이라는 주제의 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111p. ‘초자연적 공포소설 작가가 이런 교착 상태로부터 얻는 이익은, 분명 인류의 상당수가 공포에 빠진 상태에 머무르리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신의 존재론적 지위를, 혹은 신과 악마, 외계 침략자와 기타 온갖 무서운 것들의 존재론적 지위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도라면 우리가 발명하거나 예지한 저 도깨비가 실재하는지 아닌지는 잊어버리라고 충고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실재하는가?’
310p - 312p. '이제 자아는 없다고 의식적으로 말한다. 당신의 옛 자아든 새 자아든 느낄 수 없다. 자아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상상이고, 당신 주위에 보이는 것은 자의식 있는 무뿐이다. (...) 팔아먹을 철학은 없다. 비관론은 팔리지 않으며, 낙관론은 통과하기 위한 조선이 너무 사악해서 문을 닫아야 핬다. (...) 이제 무엇이 있을까? 이제 부자연스럽게 떠오른 미소만이 있다. 어둠이 어둠으로 이어지는 거대하게 벌어진 심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때, 존재의 감각이 삼켜진다.‘
반박하기 쉬운, 혹은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반박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철학을 읽어내려가며 도달한 심연에서 우리는 그동안 직면하려고 하지 않았던 수많은 공포 개념들을 ’공포‘가 아닌 실존적 사고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작가가 결코 비관이 아닌 비관론을 제시한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공포 픽션을 읽을 만큼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살아 있다는 공포’를 느끼며, 공포를 삶에 녹여 내는 신비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