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록

생활 밀착형 어둠

츠지무라 미즈키 <야미하라>를 읽으며

by locki

<야미하라>는 총 5장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으로, 다소 생소한 제목은 어둠을 뜻하는 일본어 ‘야미(闇)‘와 '하라스먼트(Harassment)'를 합성함으로써 작가가 자신의 스토리에 일종의 신조어를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신조어 중 ‘파워하라(Power-Harassment)', 즉 권력을 이용한 사내 괴롭힘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 이런 기존의 어구가 나타난 배경은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이다. 즉, 작가 또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서서히 어둠에 잠식당하는, 불쾌하고 오묘하지만 무어라고 설명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공포는 ‘일상’에서 나온다. 그것도 그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 속에서 주인공은 꽤나 분석적인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주인공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독자가 자신의 마음을 주인공에게 내어주어 동일시한 뒤에는 이미 늦었다. 주인공에게, 즉 독자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종지에는 어둠에 짓눌려 함께 추락한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주인공이 사라진 페이지를 바라만 보게 된다.


특히 2장 <이웃>은 너무나 불편하다. 주인공 유키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투신한 여성에 대해 유키와 남편이 대화를 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들의 대화는 점점 집값으로 향한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후유증이 남을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유키는 학교 미팅에 나갈 준비를 한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대화는 한 여성이 땅에 떨어지고 난 직후에 시작된 것이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불편하지만 익숙하기도 하다. 학교의 학부모들은 급을 나누고, 누군가를 배척하고, 간을 보고, 기를 겨루지만 그런대로 모임은 흘러간다. 그 무리에서 설령 누가 죽어 나가더라도. 죽은 학부모의 마지막을 기리자며 단체 메신저를 주고 받는다. 마무리는 이모티콘으로.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운 유키는 ‘야미하라’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그 몇 명의 학부모를 이런 식으로 죽게 만들었던 가오리에게 소위 ‘정신 공격’을 당하다가 몸이 붕 뜨는 것을 느끼고 만다. 추락하는 것이다.


로사 몰리아소의 <아름답고 죽은 그녀>라는 소설도 떠올랐다. 강둑에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정작 소설은 그 시체를 발견한 사람들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언젠가부터 ‘그래서 그 죽은 여자는?’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될만큼 잊힌 상태로. 제목 자체는 그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더욱 불편한 감정이 들지만, 인물들의 일상 속 다툼과 혼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녀는 그렇게 강둑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생활 밀착형’ 공포를 느끼기에 아주 적합한 소설일 것이다. 어떤 어려움도 없이 독자를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키처럼 추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고가는 ‘야미하라’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생활로 돌아오는 독자는, 그동안의 불쾌함을 작가와 함께 정의 내리며, 관계 뿐인 사이에서 한 발 떨어져 그 어두운 ‘힘’의 자취를 따라가볼 기회를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미하라’를 관통하는 노래 가사가 떠올라 적어 본다.


복잡한 인간관계, 그 자체가 역설.

관계만 있고 인간이 낄 틈 하나 없어.

- 에픽하이, 빈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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