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록

내가 먹어버리기 전에 나를 찾아줘

'Eve'의 가사들을 읽고

by locki


니코니코 동화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남성 우타이테이자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 ‘Eve'. 그의 가사와 뮤직 비디오가 만들어낸 수많은 캐릭터는 마치 실존하는 만화처럼 자리 잡을 정도이다. 어딘가 난해한 문장들이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늘 어딘가를 향해 있다. 바로 ‘너(君)‘.


그 행선지를 나름의 타임라인을 통해 정리해보고자 했다. ‘アウトサイダー(아웃사이더)’, ‘いのちの食べ方(목숨을 먹는 방법)‘, ‘ドラマツルギー(드라마트루기)’, ‘トーキョーゲットー(도쿄 게토)‘, ‘ナンセンス文学(난센스 문학)’, ‘ラストダンス(라스트 댄스)’. 이렇게 총 여섯 가지의 이야기를 해부해 보았다.


* 모든 해석은 저의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 편의상 주인공을 소년으로 특정합니다.

*볼드체는 노래의 제목입니다.

* 파란색 글씨는 실제 가사의 번안입니다.


첫 번째 곡을 아웃사이더로 선정한 이유는, 계속하여 주인공이 ‘너’를 찾게 되는 최초의 ’ 명분‘이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앞으로의 모든 모험에 대한 ’ 설명‘ 내지는 ’ 변명‘이기도 하다. 있잖아 이 세상을 어딘가에서 뒤엎고 싶어서 힘껏 노력해 주인공은 그렇게 소년 소녀 모여서 으르렁거리기 시작한 회심극 속의 한 명이 된다.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이 소년은, 드디어 ‘너’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너밖에 할 수 없는 것은 뭐야 그리고 소년은 ‘너’를 쫓아낸다. ‘너’의 이름을 숨기고 이 연극에 나타나 이 무력감을 뒤흔들어 희망을 주지 말고, 모두 도려내 버리라고 한다. 흑백뿐인 황무지에서 소년은, 마음속의 괴물이 사랑 따위 허락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유를 암시하는 듯한 대사를 뱉는다.


그때 나타났던 ‘너’는 누구이며, ‘마음속의 괴물’은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시간을 돌려 목숨을 먹는 방법 속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너는 오지 않겠지 ‘너‘를 아직 만나지 못한 이 소년은 부족한 것을 찾아서 배낭여행을 하는 중이다. ’ 너‘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지만, 오지 않아 방황하게 된 소년은 많은 생명체들과 마주친다. (이는 뮤직 비디오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인외 생명체들은 어디서든 등장하는 시그니처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다.) 분명 자신이 떠돌고 있는 이곳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니, 얼른 ’ 너‘가 이곳에 오길 바라는 마음에 재촉을 해 본다.


이 노래의 가사는 유독 난해하며 해석이 불가하다는 평을 받는데, 이는 ’ 너‘가 결국 ’ 오지 않는다 ‘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이 소년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알 수 있다. 소년은 애초부터 하나뿐이라는 것을.


너의 후두를 찢어놓고 손끝을 적셨어 포크의 사용법 같은 건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어 소년이 찾던 ’ 너‘는 어쩌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어쩌면, 이라는 것은 또 다른 ‘너’의 가능성이다.) 뮤직 비디오에서도 등장하지만, 소년과 같은 얼굴을 한 또 다른 소년이 먹어 치워 진다. 소년이 찾던 ‘너’는 또 다른 소년의 자아임을 짐작해 본다. 회심극 속에서 도망치길 바랐던 ‘너’를 먹어 치움으로써, 소년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괴물과 가까워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의 그 연극을, 소년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눈을 가려 현실을 보지 않는, ‘목숨을 먹는 방법’인 것이다. 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우리에게 그것을 잊는 것은 용서되지 않으니까

생각하는 것조차 그만둬버려


그럼에도 소년은 이 연극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만다. 드라마트루기에서 들을 수 있다. 우리들 전원이 연기하고 있던 거야 그러나 엔드 롤을 향해 가고 있으니 지금처럼 필사적으로 연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나 같은 건 없어 어디에도 없어 소년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지 못한다. (먹어 버렸으니.) 그리고 남아 있는 수많은 ‘너’들. 우리들은 지금 자 자 서로 먹으면서 ‘목숨을 먹는 방법’을 알게 된 소년은 이 극장 위에서 서로를 먹어 치우는 편을 선택한다. 그동안 잊어선 안 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었다면, 이번엔 조금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잊지 못하는 것들을 먹어 버리며.


하지만 여기서 흑막이 등장하고 만다. 어느새부터인가 외야에 있었어 이 흑막은, 소년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어 보인다. 다정함에서 온도도 느껴지지 않아 내민 손에는 의심밖에 없어 그러니 소년은 하던 일을 마저 한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예상했지만 막상 등장한 녀석은 동요도 없어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흑막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가 궁금하다. 너에겐 어떤 식으로 보이는 거니 노래는 큰 따옴표로 된 어구로 끝이 난다. “그 눈에 비치는 것은”


*드라마트루기 : ‘연극법(dramaturgy)'을 뜻하는데, 사회를 마치 극장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로 보는 은유법이다.


그렇다면 그 눈에는 무엇이 비쳤을까. 도쿄 게토가 흑막의 눈으로 이야기해 준다. (그는 그동안의 소년과 달리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어 구분하기 쉽다.) ‘게토(ghetto, 빈민가)‘라는 표현에서부터 드러나지만, 그가 있는 곳을 나아가지도 못하는 퇴폐적이고 히피한 거리라고 서술한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이 가짜였어요 연극 속에서 모두가 필사적인 연기를 하던 때와 같이, 그가 소년과 작별하고 마주한 세상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곳을 향한 두 존재의 소년은, 각각의 세상에서 폐허를 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친 두 소년. 자신의 연극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하는 소년과, 그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소년이 있다.

그런 그런 표정이 한순간 내 눈에는 아름답게 비춰졌어요 줄곧 어디선가 당신을 동경해서 그럴 때마다 자신을 잃을 뻔했어요

마지막 구절에서 이 소년은 진짜를 넘어서라고, 그렇지 않으면 또 여기에 갇혀 있을 거라고 말한다. 진짜 소년은 여기에 있지만, 그동안 모험을 떠난 ‘너’는 아름다워 보이니까, ‘나’라는 진짜를 넘어서 새로운 ‘나’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소년의 연극에 찾아온 것은 비단 이 흑막뿐이 아닐 것이다. 연극에는 로맨스도 있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동안의 인물들과 달리 소년을 ‘당신’이라고, 그들을 ‘우리’라고 칭하는 존재의 등장은 난센스 문학에서 엿볼 수 있다. 다시 태어나자 우린 바보가 되어 허공을 맴돌아 지금만큼은 잊고 랏탓타 그가 마주할 수 있었던 현실을 외면하는, 어쩌면 진짜 흑막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 소년이 내뱉지 못하고 삼키는 속마음이 드러난다. 진짜 나는 없다고 나답게 따윈 없다고 당신과 당신이 나는 이렇다고 각자 생각하는 게 있잖아 모두 틀려 정답 따윈 없어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바보 취급 당할 것이라며 관두고 만다. 그런 것을 모두 알면서 서로 상처를 입히고 또 밤새 함께 춤을 추는 넌센스한 일. 너에게 라면 난 맡겨보고 싶어 그럼에도 그들은, 혹은 ‘나’는, 이 바보 같은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게 등장했던 그는 라스트 댄스 속에서 마지막 춤을 추며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당신은 말했어 소모품이야 결국 모든 곳에 흩어진 ‘나’는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다시 이렇게 춤추게 해 주지 않을래 묻는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아닌 것 진의를 알면 최후가 된다고 한다면 혀가 마를 때까지 이야기하자 지금까지의 모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결국은 하나뿐인 소년이었음을 깨닫게 되며 이 존재가 마지막을 맞이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내일을 선택한 우울증 환자(연극 속 연기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이 소년이 결국 이 모든 모험을 하다가 마침내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우리는 일화가 되어서 지금 불확실한 미소를 띄우고는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지금 너에게 얘기할게 이 모든 일화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셰익스피어의 문학부터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사실 깊은 인간 내면의 연구에서부터 등장했다. 그럼에도 눈을 시퍼렇게 뜬 소년이 인외 생명체들과 방황하며 혼란을 겪는 이야기로 이 모든 것들을 풀어내며, 분열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소년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어지는 마력이 있다. 엄청난 작화의 뮤직 비디오를 찬찬히 따라가 보며 그 여정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번역된 가사 출처 Eve/(곡 제목) 나무위키

•이미지 출처 Eve 유튜브 뮤직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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