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비 파크 Apr 19. 2022

우리는 좀비처럼 버텨낸다

The Korean Zombie 정찬성 UFC 선수에게 배우는 삶의 태도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준비였다. 코리안 좀비는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찼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도 성실히 수행해냈다. 마지막 도전답게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는 사전 인터뷰에서 승리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계체가 있던 날, 정찬성은 챔피언 볼카노프스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늘 겸손하기만 하던 정찬성에게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경기가 더욱 기대가 됐다. 



UFC 페더급 타이틀 전 매치가 성사되었다. 정찬성은 이날을 위해 9년 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지난 2013년, 조제알도와의 첫번째 타이틀 전 경기 중 어깨가 탈골되며 아쉽게 패하며 타이틀을 눈앞에서 놓친 정찬성이었다. 그는 곧 바로 군복무를 수행하며 재활에 나섰고, 복귀 후 그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연승을 쌓아갔다. 그리고 9년만에 다시 한번 한국인 최초이자 동양인 최초로 UFC 챔피언에 도전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박살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했다. 정찬성은 챔피언 볼카노프스키를 잡기 위해 가드를 내리며 인파이팅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썼다. 평소 완벽에 가까운 경기 운영을 보여주는 볼카에게 덫을 놓는 작전을 쓴 것이다. 얻어 맞으면서도 난전 펼치며 상대에게 카운터 펀치를 꽂아 KO승을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볼카노프스키를 상대로 어쩔 수 없는 전략이기도 했다. 과연 코리안좀비다운 전략이었다. 



그러나 챔피언 볼카는 영리했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경기 운영을 하며 말려들지 않았다. 볼카는 인파이팅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좀비에게 꾸준하게 데미지를 입혔다. 라운드가 거듭될 수록 정찬성의 얼굴은 점점 더 망가져갔다. 코피가 터지고 눈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4라운드까지 갔을 때 그는 몇번의 다운 될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상태였다.  




“더 할 수 있겠어?”




“해야죠.” 




피칠갑이 된 정찬성에게 코치가 물었다. 좀비는 경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찬성은 닉값을 톡톡히 했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 희망이 꺼지지 않은 투지가 빛났다. 그리고 곧 시작된 마지막 라운드. 챔피언 볼카노프스키 조차 정찬성에게 “너 진짜 할 수 있어?” 라고 물었다. 정찬성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나 이후 1분도 채 되지않아 펀치러시를 맞고 다시한번 그로기 상태가 된다. 비틀거리는 정찬성을 본 심판은 끝내 경기를 중단한다. 좀비의 챔피언을 향한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닥터스탑으로 경기가 중단 될 때 까지도 정찬성은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링 아나운서 조 로건이 오늘의 경기 소감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물었다. 조 로건은 뭔가를 눈치챈듯한 표정이었다. 정찬성은 낙담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시합을 지면 항상 언제든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더 이상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이걸 계속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역사 상 최고의 재능을 가진 파이터의 불이 서서히 꺼져가는 장면이었다.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최선을 다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하는 순간. 후회없이 노력하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도전했기에 쉽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찬성은 자신에게 솔직했다. 




코리안 좀비는 이날 꽤 멋있었다. 그는 승패를 떠나서 경기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모든 전문가들이 볼카의 승리를 예상했어도 정찬성은 스스로 승리의 희망을 꺼트리지 않았다. 죽도록 얻어맞으면서도 카운터 한방을 꼽기 위해 5라운드 내내 버텨냈다. 실패했지만 실패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 하나를 또 치뤄냈다. 비록 챔피언 벨트는 얻지 못했지만 자신의 이름값은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 코리안 좀비다. 



정찬성은 인생이라는 게임해서 승리할 것이다. 나는 그를 영원히 응원하고 싶다. 정찬성은 ‘동양인은 약하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한 한사람의 타이틀을 위한 욕심이 아닌, 사회와 인식 개선을 위한 도전이었다. 어떤 것을 성취해내기 위해 이렇게 죽도록 노력해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정찬성이 보여준 패배는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 어떤 승리보다도 멋진 순간이었다. 정찬성은 AOMG에서 가장 힙합이었다. 



죽도록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던 정찬성의 투지를 본받고 싶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몇번이나 쓰러지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패배를 자주 맛봐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몇백명을 제치고 들어가야 하는 취업난을 겪고 있고,  평생 일해도 서울의 집 한채 사기 힘든 시기를 보내고있다. 그럴때마다 포기하고 쓰러지고 싶다. 세상은 늘 우리를 작은 존재로 만들려고 한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포기하지 않는 정찬성처럼 살아내고 싶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죽도록 얻어맞아도 후회없이 싸우는 모습. 자신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최선을 다한 후 겪는 패배는 패배가 아니다. 정찬성 처럼 모두의 응원을 받고 또 다음 경기를 위해 준비할 것이다. 나는 좀비처럼 오늘 하루를 또 버텨낸다. 



“더 할 수 있겠어?”




“해야죠.” 



매거진의 이전글 조계사는 그의 소원을 또 들어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