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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Apr 28. 2022

파스타와 국밥

부장님과 점심메뉴로 소통하기


drawn by Hyunbum Lee


나는 국밥을 좋아한다. 물론 파스타도 좋아한다. 사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런 내 마음을 대변한 뮤지컬이 있다. 신입사원 연수 중 옆조가 발표한 “파스타와 국밥” 뮤지컬. 이상하게 이 뮤지컬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뜨끈해지고 또 든든해졌다.



그 뮤지컬은 세대 간의 갈등이 주제였다. 국밥을 먹고 싶어 하는 부장님과 파스타를 먹고 싶어 하는 사원들이 대립했다.



“점심 뭐 먹을래?”



“부장님 파스타요 파스타!”



“아니 파스타는 너무 느끼해. 차라리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어때?”



취향의 대립은 세대 간의 갈등을 단적으로 나타내기에 좋은 예시였다. 옆조는 이 상황을 유쾌하고 활기찬 뮤지컬로 풀어내 발표했다.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있었다. 발단-전개-위기-결말의 순서를 거치며 부장님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국밥, 파스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그냥 다 같이 밥 한번 먹고 싶었던 거뿐이라고!”



이 대사를 마주할 때 나는 뒤통수가 짜릿했다. 부장님의 속마음을 꺼내어 전시를 했기 때문이었을까. 흔히 말하는 ‘꼰대’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부장님의 진심에는 신입사원들과 어울리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국밥, 파스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대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과 가치관을 윗세대가 이해해주기만을 바랬었다. 정작 우리는 한 번도 부장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우리야말로 진정한 꼰대였다.



이 뮤지컬을 계기로 나는 다른 이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입사원 연수중에 배웠던 ‘리스펙트’의 가치였다. 나는 연수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조금씩 성장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보다 우리 조원들을 먼저 생각하려 했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 했다. 나는 그들에게 리스펙트를 보내고 있었다.



꿈만 같던 연수원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길고 달콤한 낮잠 같은 2주의 시간 뒤에 찾아온 평범한 일상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연수원 수료 기념으로 부모님이 곱창을 사준다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셨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친구분도 계셨다. 아저씨는 한국의 전통적 가치가 인생의 핵심가치 이신 분이었다. 남들은 그런 아저씨를 ‘꼰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날 역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에게 소주를 연거푸 따라주셨다. 소주잔을 부딪히며 아저씨는 이제 직장을 잡았으니 얼른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곱창이 너무 맛있다는 대답으로 응수했다. 



그렇게 곱창 술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오고 가는 술잔처럼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나는 눈여겨 보았던 곱창집 옆에 위치한 오래된 목욕탕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당시, 뉴레트로를 지향하는 힙스터 사상에 빠져있던 나는 30년 보다도 더 오래된 그 목욕탕이 신기했다. 그곳에 대해 아시는지 아저씨께 여쭤보았다. 아저씨는 오래된 목욕탕에 왜 관심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리고 웃으며 나는 답했다. 



“오래된 것은 재밌잖아요”



아저씨는 내 대답이 귀여웠는지 껄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맞지!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이여!”



아저씨는 아이같은 순수한 미소로 화답하셨다. 힙스터와 꼰대가 콜라보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잠깐이나마 아저씨와 감정의 연대를 하게 되었다. 오래된 것이 우리를 묶어주었다.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내 가치관에 아저씨는 리스펙트를 보낸 것이었다. 아저씨의 웃음이 사뭇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국밥이던 파스타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던 뮤지컬 속 부장님이 생각났다. 아저씨를 그저 꼰대로 치부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나의 생각이 그동안 참 게을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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