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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May 09. 2022

물이 그리운 사람이 사는 집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집 처럼,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조용하고 예쁜 집에서 쉬고 싶다. 뻑뻑한 눈을 비비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날들의 연속. 도시생활의 잡음에서 잠시나마 멀리 떨어져 지내보고 싶다. 그래서 에어비엔비 앱을 켠다. 경기도는 너무 가깝고 강원도는 너무 뻔하다. 적당히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인 충청도를 골라본다. 충청북도 청주. 이곳은 내가 가본적이 없다. 마침 예쁘고 조용해보이는 집 한채가 보인다. 예약하기 버튼을 누른다.



청주하면 어렴풋이 기억나는 유튜브 영상을 하나 찾아본다. 청주 출신의 메가 유튜버 맛상무의 영상. 그가 소개했던 소머리 수육 집이 청주였었지 아마. 유튜브 검색창에 ‘맛상무 청주’를 검색한다. 몇개의 영상을 뒤적이지만 단번에 찾아내지를 못한다. 그치만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결국은 찾아낸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쫀득한 소머리 수육, 그리고 꼬릿한 곰탕을 내어주는 집. 대길식당을 들러야겠다.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 흔한 시장의 풍경이지만 내가 이곳에 처음 와봤다는 자체가 기분이 좋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들. 서울과 멀리 떨어지니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드디어 대길식당에 들어선다. 아주머니가 혼자 묵묵히 파를 다듬고 있는 집. 금요일 낮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집. 유튜브에서 본 소머리 수육을 하나 주문한다. 그리고 청주에 왔으니 천연사이다도 한잔. 쫀쫀한 수육과 산뜻한 사이다 한잔이 청주다.



이제 예약한 에어비앤비로 향한다. 수향원이라는 팻말이 있는 집. 싱그러운 꽃들과 정갈한 잔디가 어우러진 곳이다. 에어비엔비앱의 설명을 따라 현관문을 열고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경사진 천장과 피아노가 돋보인다. 그리고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씨디들과 엘피들을 살펴본다. 나는 짐을 풀고 바로 그중에 하나를 꺼내 오디오 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발코니에 나가 아름다운 가곡과 함께 싱그러운 정원을 감상한다.



TV가 없는 이곳에서 할 것은 식사와 산책 뿐이다. 조용하고 예쁜 집에서 쉬고싶다는 내 생각을 실현해주기 딱 좋은 곳이다. 우리는 산책을 하고 먹을 것을 사온다. 숙성회와 깐풍기, 그리고 뉴질랜드산 푸나무 와인을 곁들인다. 관광지가 강요하는 억지특산물을 먹지 않아도 되서 좋다. 그렇게 와인을 홀짝이다 보니 벌써 잠이 온다.



선선한 아침공기와 짹짹이는 새소리에 잠에서 깬다. 발코니에 나가 부스스한 채로 가덕면의 아침 풍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제 신청한 아침식사를 먹기 위해 내려간다. 호스트 아주머니가 반겨준다. 에어비앤비의 어원 처럼 Air bed는 없어도 Breakfast는 있는 여행이다. 예쁜 식기와 커피잔이 아름답다. 토스트 하나를 들어 크림치즈와 잼을 바른다. 그리고 크레마가 떠 있는 에스프레소도 한잔 곁들인다.



식사를 하며 아주머니의 인생을 듣는다. 교수를 하고 은퇴해서 이 집에 온 얘기. 건축가 사위와 함께 이집을 증축한 얘기.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작곡가 딸 얘기. 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얘기. 식품영양을 전공했지만 예술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얘기. 꽤 흥미로운 하나의 인생을 빠르게 접해본다.



“내가 바닷가에서 자랐어요. 근데 남편을 따라 이곳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된거죠. 물이 그리워서 이집 이름을 수향원으로 짓게 된거에요.”



호스트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며 신나게 얘기를 이어간다. 작은 것에도 사연이 가득 담긴 살림살이들. 에어비엔비를 통해 조용한 산골마을에서 그 누구보다 활기찬 새로움을 얻어가는 날들. 수향원의 주인은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재기발랄한 ENTP 아주머니였다.



짧지만 진했던 이틀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간다. 별다를 것 없이 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던 날들. 여행이 아니라 잠시 청주 사람이 되어 이틀을 보내서 좋았다. 어디에서나 우리집 처럼,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엔비 슬로건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물이 그리운 사람이 사는 그 집을 종종 그리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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