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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May 17. 2022

P의 로드트립

현실을 상상으로 만들어 보는 일에 대해


샤워를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로드트립을 떠나보면 어떨까? 졸업은 곧 다가오고 한국에서는 친구가 놀러오기로 한 때였다. 샤워를 하다보면 가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찾아온다. 나는 그 생각을 붙잡아 놓고 싶어 바로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우리 로드트립 가는거 어때?”



“오 그거 좋지”



당시의 나는 로드트립이 뭔지도 잘 몰랐고 딱히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해본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점에 로드트립은 재밌을거 같고 꼭 가야할거만 같았다. 아마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뭔가 추억을 만들어야 겠다는 내 무의식이 빚어낸 아이디어 였던거 같다. 



2018년의 겨울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무사히 학사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로드트립을 떠날 수 있었다. 떠나기전 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귀가하는 길에 우버를 탔다. 우버기사에게 우리가 내일 로드트립을 떠난다고 했다. 기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너네 Route 66 노래 듣고 로드트립 가게 됐구나?"



우리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못알아듣고 대충 얼버무렸다. 나중에 찾아보니 Route 66는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었다. 시카고에서 LA까지 이어지는 길, Route 66에서 이뤄지는 로드트립에 관한 노래였다. 우리는 바보같이 그 노래도 모르면서 로드트립을 간다고 설쳐댔던 것이다. 명곡 [Route 66]도 알았으니 우리는 이제 로드트립을 떠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우리는 미국 중부 로드트립으로 결정했다. 메릴랜드에서 시작해서 미국 한 가운데를 크게 훑고 다시 메릴랜드로 돌아온다는 목표만 정하고 떠났다. 그렇게 우리는 무작정 피츠버그로 향했고 이후에는 오하이오-클리블랜드-디트로이트-시카고-신시내티-켄터키-웨스트 버지니아를 찍고 다시 메릴랜드로 돌아왔다. 3,000km가 넘는 운전을 버텨냈다. 



대략의 동선만 짜놓고 모든것을 즉흥적으로 결정해 돌아다녔었다. 덕분에 우리는 디트로이트에 와서야 에미넴이 살던 동네란 것을 알고 총에 맞지 않기 위해 차밖에 나가지 않았다. 시카고에서는 무작정 아무집이나 들어가 찐로컬 시카고 피자를 먹으려다 피자스쿨보다 맛없는 피자를 먹었고, 켄터키에서는 할아버지 치킨의 원조를 먹고 카페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예상할 수 없는 즐거움이 가득한 P의 여행이었다. 



우리는 1600마일을 넘어 다시 메릴랜드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괜히 감격스러운 마음에 퀸의 [We are the champions]노래를 틀고 자축했다. 별다를 것 없는 여행이었지만 뭔가 우리가 해낸거 같아서 뿌듯하고 즐거웠다. 아마도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여행을 완주해서가 아니었을까. 돈을 써가며 마구잡이로 한 여행이 오히려 우리의 자존감을 올려줬다. 서른 남짓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 로드트립 했을 때를 꼽을거 같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아주 종종 그 여행을 그리워 한다. 매일이 즉흥적인 새로움으로 가득찼던 나날들. 무작정 도전하고 부딪혔던 2주. 예측불허의 순간들이 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잊을 수 없는 청춘의 한 페이지였던거 같다. 멍한 눈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며 가끔씩 로드트립을 그리워한다. 



샤워를 하며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든 일. 내 자신이 가장 빛나는 시간들이었다. 나만의 Route 66를 개척하고 싶다. 갑작스럽게 로드트립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던 그때처럼. 항상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쫓고싶다. 로드트립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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