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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Sep 01. 2022

상무님의 선곡

금요일 회식 자리에서 이뤄낸 뜻밖의 음악적 연대 


귀중한 금요일 밤, 나는 회식 자리를 간다. 금쪽같은 불금의 시간을 상무님, 팀장님, 부장님, 과장님과 보내야한다. 부장님은 내게 며칠전 회식 때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열심히 회사 근처 삼겹살, 쪽갈비, 횟집을 찾아 보내드렸었다. 회식 장소는 결국 갑오징어 식당으로 결정 되었다. 부장님의 추천 맛집이었다. 여러모로 참 흥이 안나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 후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갑오징어 집에 들어갔다. 상무님과 부장님, 과장님은 벌써 반만남은 초록병을 옆에 두고 빙그레 웃고 계셨다.  나는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았다. 그리고 부장님은 내게 말했다. 


“정빈씨가 먹고 싶은거 다 시켜~ 근데 난 이집은 숙회가 맛있더라 ㅋ~”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상사들이 빵 터졌다. 과장님은 그렇게 말하면 정빈씨가 무서워서 다른 걸 어떻게 시키겠냐고 했다. 나는 하하하 웃고 무서워서 갑오징어 숙회를 시켰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던 갑오징어 삼겹살 볶음도 함께 주문했다. 



머쓱하게 음식을 기다리다가 미리 나와있던 해물파전을 한입 베어 물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이러면 안되는데. 간이 짭짤하게 잘된 파전에 통통한 새우와 쫄깃한 갑오징어가 듬뿍 들어있었다. 순간,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소주파 부장님의 맛집 선택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고. 설마? 하는 기분으로 곧이어 나온 숙회를 집어 먹었다. 세상에. 너무 맛있었다. 부장님의 50년 맛집 내공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그리고 감칠맛이 일품인 갑오징어 삼겹살 볶음이 나왔다. 소주가 절로 들어갔다. 허기진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니 내 기분도 올라갔다. 기대치가 없던 금요일에 텐션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맛있는 갑오징어를 마무리 하고 2차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마늘치킨을 앞에 두고 맥주를 비우며 미소도 함께 나눠 마셨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과장님이 진지한 고민을 털어놨다. 시어머니와 아내의 사이가 좋지 않아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 고부갈등의 흔한 레퍼토리 였다. 그치만 상무님은 진지하게 경청하고 답변 해주셨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결국엔 아내편에 서야 한다는 의견.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라는 말을 하셨다. 상무님 다운 답변이었다.



내가 아는 상무님은 로맨티스트셨다. 초등학교 짝꿍이었던 첫사랑과 결혼 하셨다는 얘기를 전에 해주신 적이 있다. 상무님의 인생에 있어 모든 결정의 중심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아내분 얘기를 할때마다 입꼬리는 항상 올라가 계셨다. 상무님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항상 아내분이 함께했고, 좋은곳을 늘 함께 다니시는 것 처럼 보였다. 본받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었다. 



과장님의 진지한 고민 상담이 끝나고 분위기를 바꿔보려 선택한 3차는 노래방이었다. 기대감이 없던 회식자리가 점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방이 조금은 기대가 됐다. 모든이들의 음악취향이 궁금했다. 과장님이 제일 먼저 선곡을 시작했다.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 회사 행사가 있을때마다 사회자로 나설 만큼 끼가 있는 과장님의 진지한 코믹 댄스가 돋보이는 곡이었다. 박수갈채를 뒤로하고 항상 호쾌하게 전화를 받으시는 부장님의 선곡이 이어졌다. 노라조의 슈퍼맨. 대인배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부장님의 무대였다. 점점 재미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다음은 팀장님의 애절한 락발라드, 버즈의 남자를 몰라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나름의 최신곡을 선곡하신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 애절함이 더욱 배가됐다. 그리고 이제 기대가 되는 상무님의 차례. 상무님의 첫 선곡은 내가 모르는 노래였다. 들국화의 제발. 어떤이를 처절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샤우팅 창법에 녹아 있었다. 나는 그 절절한 마음을 조용하게 음미했다.



나도 상무님에 이어 선곡을 했다.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는 선곡을 해야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유튜브로 옛날노래를 찾아보는게 내 요즘의 취미 인지라 김광석 뿐만 아니라 소방차, 조용필 등의 다양한 옛날 노래를 알고 있었다. 상무님과 팀장님이 특히나 좋아하셨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아냐며 요즘 애들 같지 않다고. 우리는 세대를 넘어 음악적 연대를 하고 있었다. 재밌는 금요일 밤이 가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상무님의 선곡이 이어졌다. 이번 선곡 역시 기대가 됐다. 이번 노래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쓸쓸한 마음이 담긴 노랫말. 상무님은 노래방에서도 로맨티스트셨다. 그렇게 나는 오늘 플레이리스트에 들국화와 윤도현의 숨은 명곡을 담아갔다. 



생각보다 괜찮은 금요일밤이었다. 애절한 락발라드를 목놓아 부르는 팀장님. 호쾌한 가창력으로 노라조의 슈퍼맨을 열창하던 부장님. 우리들을 웃겨주려고 진지한 표정으로 비의 댄스를 따라하는 과장님. 감성을 가득담아 샤우팅 창법을 보여준 상무님. 모두의 열정적인 무대 덕분에 오늘은 직책이 아니라 사람이 더 보이는 날이었다. 키드밀리나 뉴진스가 있었던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국화와 윤도현이 함께 자리했다. 직책이 담을 수 없는 인생의 크기를 보면서, 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이 조금은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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