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일을 하는 이유
여자친구와 헤어지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그리고 내 복잡한 머릿속에서 번쩍든 생각은 이거였다. “등산을 하고 싶다.” 평소에 등산을 잘 하지도 않고 그다지 관심도 없는 나였다. 그런데 내 머릿속은 도대체 왜 등산으로 가득찼었던걸까.
혼자 등산을 한건 꽤 오래전 일이었다. 마지막 혼산(혼자 등산)은 아마 2년쯤이었던거 같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을때 혼자 등산을 갔고,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에게 호감 표시를 했다가 거절 당했을 때 혼자 등산을 갔다(이렇게 적고보니 등산이 내게는 힐링캠프 였나보다). 나는 항상 힘들때마다 신이 아니라 산을 찾는다.
도시가 주는 재미만을 알차게 누려오던 나는, 정작 힘들땐 자연을 찾는다. 그래도 자연은 삐지지 않고 오랜만에 돌아온 나를 너그럽게 품어준다. 그리고 나는 자연의 품에 안겨 운다. 초록색이 주는 심신의 안정과 지저귀는 새소리에서 느끼는 평안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닦아내는 땀방울. 산은 나를 잠깐이나마 안정되게 만들어준다. 그것 때문에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산이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이별을 겪은 나는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큰거 같다. 등산을 하고 싶었던건 어쩌면 간편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등산은 정말 심플한 일이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고.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해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거 같은 착각에 빠져 손쉽게 뿌듯함을 누릴 수 있다. 장기적인 성취감을 쫓는 행위는 등산처럼 이렇게 빠른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등산은 효율적인 일이다. 나는 그래서 등산을 한다.
어렸을 적에는 등산하는 어른들을 보며 생각했다. 등산은 도대체 왜 할까? 내려올껄 알면서도 왜 그리 높이 오를까. 어린 나의 눈에 등산은 이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치만 이제 나는 알아버렸다. 내려올껄 알면서도 올라가는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등산의 이유를 알게 되버린 어른이 된것 만 같다.
나는 그렇게 매주 일요일이 되면 등산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선다. 산을 오르는 일이,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있다. 계속 오르다 보면 내 모든 능력치도 올라갈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 아차산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