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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Jun 16. 2022

전범선과 양반들

강한 가치관을 가지면서도 강요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밴드 '양반들'의 보컬 전범선을 좋아한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에세이 “남자가 고기를 먹어야 힘을쓰지”를 통해서였다. 채식주의자의 인생을 사는 그가 김밥천국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풀어놓은 글이었다. 햄,오뎅,멸치 등을 빼고 오직 야채만 넣은 김밥을 원했던 그는 아주머니에게 꾸중을 들으며 채식주의와 대한민국 사회의 거리감을 재확인했다. 덥수룩한 턱수염을 지닌 비건 록밴드 보컬의 이야기. 나는 너무나도 그의 음악이 궁금해졌다. 애플뮤직에서 그의 밴드 '양반들'을 검색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노래는 [아래로부터의 혁명] 이었다. 동학혁명의 전봉준과 먼 친척인 전범선은 그 노래를 통해 엎어버리는 에너지를 음악으로 발산했다.  2017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 최고의 노래상을 수상한 곡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밴드 양반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곡이다. 순한글말의 가사와 강력한 록사운드의 구성은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세계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최근에 낸 싱글 [두무개다리]에서 역시 아름다운 한글 가사에 몽환적인 리듬과 선율을 담아냈다. 전범선은 야채만 먹고도 조선록 에너지를 발산 중이다.



양반들 음악의 정체성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전범선은 민사고 졸업 후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에 진학해 역사학을 공부한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글로벌 명문대에서 자신의 깊이를 만들어갔다. 이런 특이한 공부 이력이 밴드 양반들을 탄생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어제를 공부하고 미래를 알게된 그는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되 한국색을 잃지 않기로 다짐한 것 같다. 낮에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밤에는 풍류를 즐기는 삶의 형태를 '양반들'이라는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그는 양반적 삶의 자세를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천한다. 전범선의 정체성은 가수를 넘어 비건, 작가, 책방 풀무질 주인, 식당 소식의 주인으로까지 확장한다. 잡식주의자인 내 관점에서 그의 인생은 조금 피곤해보인다. 나하나 챙기기도 힘든 세상에서 동물해방을 외치며 인권이 아닌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탁에서 그를 만났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 했겠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범선은 비록 나와는 조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나는 그를 좋아한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누구보다  알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범선은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있다. 아이비리그 출신 국제 변호사가 아닌 동물해방을 외치는 록밴드 보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가 가진 신념보다 그의 화법, 태도 때문에 그를 더 좋아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는 것 만큼 다른 의견을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비건이지만 채식주의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본인 생각의 가능성 만큼 다른 생각의 가능성도 항상 염두에 둔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면서도 다른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전범선 덕분에 처음으로 채식주의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날 세상을 바꾸는 국제변호사를 꿈꿨던 전범선은 지금 록밴드 보컬이 되었다. 그가 선택한 길이기에 삶의 주도권은 그 자신에게 있다. 그를 보며 오랜만에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대로 되는 인생을 살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누구보다 뜨거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머릿속을 채워 내 삶에 적용해야한다. 낮에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밤에는 풍류를 즐기는 삶, 나도 양반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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