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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Sep 15. 2023

나는 슬플 때 아보카도를 먹어

문과 남자의 과학적 사고법




수영에 간헐적으로 중독됐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헬스장으로 갔다. 여자친구와 이별 후 잡생각과 잔여 감정을 떨쳐내기 위한 뭔가가 필요했다. 미국 헬스장은 수영장이 있어서 좋았다. 헬스장 수영장에 가서 유튜브를 보고 익힌 영법을 연습하다보면 잡생각이 사라졌다. 아득한 물속에 잠겨 몇시간 동안이나 팔을 휘젓고 부지런하게 발길질하다보면 마치 명상하는 것 같았다. 생각이 일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이별의 아픔과 학업 스트레스를 수영장 물에 녹여냈다. 



수영을 끝내면 나는 꼭 치폴레를 가는 루틴이 있었다. 치폴레는 미국 서부식 멕시코 음식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체인점이었다. 나는 과카몰리를 먹기위해 수영을 마친 후 그곳에 늘 갔다. 명상과 같은 긴 시간의 수영을 마치고 야채와 고기 가득한 부리또 볼을 먹으면 너무 행복했다. 또띠아에 각종 재료들을 올리고 과카몰리를 듬뿍 얹어 먹었다. 치폴레는 미국 유학 생활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사실 수영과 치폴레는 전부 내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활동들 이었다. 나는 슬프고 우울할 때 과학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나는 늘 근거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유산소 운동'과 '아보카도'였다. 뜬금 없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늘 이유가 있다. 이유를 알고 하면 더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산소 운동은 심장을 쓰는 운동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Cardio 라고 부른다. 심장을 많이쓰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심박수가 안정화되어 장기적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심장이 튼튼해지면 공포와 위협에도 심박이 안정적으로 뛴다.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각종 위협에 잘 견딜 수 있는 육체와 멘탈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비교적 안정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유산소 운동은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당 운동으로 2,500kcl 이상을 소비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8%나 낮아진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으로 열을내고 땀을빼면 체온이 상승하고 뇌에서 근육에 이완 명령을 내려서 불안이 감소하고 기분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뇌과학 또한 유산소 운동의 이점을 잘 설명해준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모노아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 되는데, 여기에는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이 포함되어 있다. 세로토닌은 마음을 안정화 시켜주고 도파민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행복감을 주고 노르아드레날린은 의욕을 생기게 만들어 준다. 모노아민 분비는 결국 우리에게 긍정적인 정서적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한다. 유산소운동은 내게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는 슬플 때 유산소 운동을 하고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아보카도에는 세로토닌 합성에 도움을 주는 트립토판 성분이 풍부해서 뇌에서 기분 좋게 느껴지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세로토닌 합성이 빠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빠른 수치 회복이 가능해서 주요우울장애 유병률이 낮아진다고 한다. 수영 후 과카몰리를 먹으면 행복감에 간헐적으로 중독된다. 



유산소 운동과 아보카도를 맹신하는 것은 어쩌면 위험한 일일수도 있다. 이 두가지가 모든 우울과 슬픔을 물리칠 수 있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 두가지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어쩌면 플라시보 효과 때문일수도 있겠다. 유산소 운동과 아보카도가 나의 슬픔을 물리쳐주고 행복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건강한 선순환을 믿었다. 몸에 이로운 활동과 건강한 음식이 나의 감정과 심리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논리적인 사고법이다. 어떤일을 하기전에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고 행하면 더욱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근거가 있는 일은 나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 그리고 플라시보 효과로 인해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선물해줄 수도 있다. 물론 다양한 과학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는 균형있는 자세는 늘 필요하다. 문과 남자의 과학적 사고법이다. 



나는 과학적 사고가 삶의 태도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해보며 입증하는 것. 믿을만한 근거를 부지런하게 늘 찾아보는 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메타인지를 높히려고 항상 노력한다. 알고 하는 일은 확실히 다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래서 슬플 때 수영을 하고 아보카도를 먹는다. 비록 나는 문과지만 과학적 사고법을 사랑한다. 식탁위에 늘 아보카도를 쟁여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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