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리버모어 저, 진짜 투기자 제시 리버모어에 관하여
'투기'라는 단어는 국문에서 특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speculation"라는 영단어는 그래도 국문 '투기'보다는 조금 더 중립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전 주로 후자의 관점으로 '투기'라는 행위를 바라봅니다. 명저 <증권분석>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란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원금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적절한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이며, 이것 외에는 모두 투기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서도 투기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한다고 생각하면서 투기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조언을 건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이런 '투기'에 대한 넓은 정의는 조금 못마땅합니다. '투자가 아니면 모두 투기'라는 정의는 정말 레밍처럼 아무 생각 없이 뇌동매매를 하는 사람과 그래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기반으로 매매하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조지 소로스는 투기꾼입니다. 하지만 조지 소로스와 X싸 이X진 등의 유사 투자자문 회사에 돈을 넣은 사람과 똑같은 투기꾼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 투기란 "원금의 안전성"을 포기하고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 나름의 투기의 정의를 충족하는 투기자의 대표주자가 바로 제시 리버모어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 가지 명확히 하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전 책을 보면 그 책의 저자의 관점에 최대한 동조하면서 독서를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저자에 대해서나 저자의 사상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제가 워낙 유명한 책들만 보기 때문에 이런 독서법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시 리버모어 같은 경우에는 분명 투기꾼이었고, 그 결말이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막 독서를 마친 까닭에 다소 긍정적으로 서술하더라도 독자 분들께서 비판적으로 서평과 책을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책은 100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으로, 담담하고 직설적인 문체로 쓰인 쉬운 글입니다. 그래서 글을 쪼개서 감상을 작성하기에는 조금 민망해서 쭉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글의 초반부터 제시 리버모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사업적으로 접근하라'라는 것입니다.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잡고 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시 리버모어는 "경마장에서 매일같이 돈을 벌 수는 없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라 1년에 3~4번의 기회만 찾아온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 3~4번 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 평소에 역량 범위 내에서 철저하게 분석을 하고 기다리라는 말을 더합니다. 그리고 철저한 분석도 했고, 기회의 신호도 보인다 싶어도 섵부르게 움직이지는 마라고 합니다. 실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초조함" "서두름"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경고하면서 "절대로 초조해하지 말라"는 말은 건넵니다.
사실 '투기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제시 리버모어의 조언 사이에 약간의 간극이 있었습니다. 특히 중간에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어떤 성공한 투기꾼 - 물론 노년까지 성공한 채로 살았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주가 시세를 알려주는 티커도 없이, 시세를 며칠씩 지연돼서 받아보고 실제 거래는 1년에 서너 번 증권사에 가서 하면서도 투기로 성공하고 있다는 이야기에서는 더욱 기존의 투기꾼 이미지와 큰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마치 워런 버핏이 오마하에서 사업보고서, 잡지, 책 등을 보면서 유유자적 기회를 노리다가 기회가 왔을 때 큰돈을 투자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읽어보고 잠시 책을 덮어두고 생각해봤습니다. 제시 리버모어와 캘리포니아의 그 모 투기꾼과 워런 버핏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국 "예측이 틀렸을 때 대가가 무엇이냐"라는 것이 차이가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시 리버모어나 투기꾼은 결국 가격의 움직임에 베팅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실체가 딱히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분석, 직감 등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의 경우 예측이 틀렸을 때에도 결국 "가치"라는 실체를 보고 투자한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내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가격이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 애초에 가격을 예측하려고 시도하지 않겠지만 - 의지할 수 있는 경제적 실체가 있다는 것이 차이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글의 중반에서 "내 손 안의 돈을 느껴보라"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현금을 직접 세 보면서 "평가이익"이 아니라 "진짜 돈"을 보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고, 사업적으로 투기를 하려면 단기간 내에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단기적으로 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1년에 100%씩 수익을 남기려고 하는 등- 하루 1%씩 수익을 남기겠다는 말은 1년에 100% 보다 더 큰 목표입니다 - '사업적 관점'에서 보자면 허무맹랑한 목표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목표에 대해서 제시 리버모어는 실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첫 해에 자신이 투자한 돈의 25%를 벌어가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는데, 사업적으로 투기를 하면서 매년 100%씩 돈을 벌겠다는 것은 너무 허황된 목표이고, 이런 조급함이 파멸을 부른다고 경고합니다. 이 부분도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사업적 관점에서 투기를 하는 투기꾼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부자 정보에 대한 제시 리버모어의 의견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가 준 어떤 정보라도 내부자 정보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분석을 바탕으로 해야지 "귀한 정보" "고급 정보" 찾아다니다가 파멸한다고 경고하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증시에 새로운 일은 없다"라고 단언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큰 틀에서 보면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고, 그래서 역사를 이해하고 증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술도 다른 대가들과 마찬가지의 조언이라서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꽤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왜 이런 건실한 원칙을 가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을까?라는 의문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해설도 찾아보고, 제시 리버모어의 이야기들도 더 찾아보면서 "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결국 이유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시 리버모어는 분명 책에서 "수익을 보면 수익의 50%는 현금화해서 다른 곳에 두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합니다. 제시 리버모어가 그 조언만 스스로 실행했다면 아마 권총으로 자살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잡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배운 교훈은 "투기를 하면서 투자를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라는 것입니다. 제시 리버모어는 투기를 하면서 난 투기를 한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숱한 파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투기를 하면서 난 투자를 한다 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권총 자살의 시점이 제시 리버모어의 시점보다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투기를 할지, 투자를 할지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또 능력에 따라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이 지금 투기를 하고 있는지, 투자를 하고 있는지는 항상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스스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욱더 자주 스스로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부가적으로, 개인적으로 Loss cut은 안 합니다. 내가 추정한 가치가 있는데 가격이 떨어지면 더 사야지 왜 팔아?라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추정한 가치가 틀릴 수가 있으니 그만큼 마진을 넉넉하게 잡아서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시 리버모어의 글을 보면서 Loss cut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월터 슐로스 등 대부분의 투자 대가들은 개인투자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loss cut을 안 한다고 해도 대규모 포지션에 대해서는 풋옵션 등을 통해 손실을 제한해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몰리는 것은 방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 투자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저처럼 소규모 규모로 투자를 할 때는 워런 버핏과 같은 파생상품을 이용한 하방 위험 헷지가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loss cut 수준을 설정해야 하나 하는 고민거리를 얻었습니다. 이건 뭐 차차 고민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겠죠.
아무튼 말년이 퍽 유쾌하지는 않은 금융시장의 인사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았던 제시 리버모어이기에 후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의 물리적 분량은 적은데, 생각할 분량을 결코 적지 않다는 생각도 동시에 듭니다. "사업적 관점"이라는 개념을 따라 하면서, "리스크 관리, 자금관리"라는 제시 리버모어가 소홀했던 부분까지 최대한 신경 써서 나중에 권총 자살 같은 최후는 피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책과 함께 했습니다.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