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Jan 09. 2018

뒤틀림에 익숙해지는 법

하루키에게 위로 받은 날

나조차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만이 가득한 날.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만 표면 위로 떠오르는 날. 그러지 말걸, 로 시작해 내가 별 수 있나, 로 마무리 되는 어떤 날. 일 년에 몇 차례는 꼭 홍역같이 지나는 일이다. 몇 년째 반복적으로 빠져드는 자기연민. 이제는 크게 대수롭지도 않다.


안타깝게도 자기연민에 불을 지피는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꽤 오래 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그래서 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단점들에 대한 일종의 평가들. 면전에 대고 했어도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을텐데, 뒤에서 하는 말을 굳이 들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애써 담담한 척 스스로를 속였지만, 그 일에 대한 생각마저 멈출 수는 없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서웠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남편에게 안겼다.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내 편 같았다. 따뜻한 손으로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 네가 있어 다행이야.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왜 이다지도 불완전한 인간일까. 나의 불완전함 때문에 누군가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마음을 작게 만들었다. 작아진 마음으로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직도 가끔은 나에 대한 뒷말들이 환청처럼 들린다. 나는 쓴 적이 없는 소설이 머리 속에서 재생되기도 한다. 한 때는 환청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먹지 않을 만큼' 행동하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욕먹을 모든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 또한 무지하게 힘든 일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은 뒤틀림을 교정하려는 게 아니라 그 뒤틀림에 익숙해지기 위한 거라고 했어. 우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 뒤틀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고. 사람마다 걷는 버릇이 다 다르듯이 느끼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보는 방식이 다른데 그것을 고치려 한들 쉽게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고치려다가는 다른 부분마저 이상해져 버린다고 말이야.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몇 날 며칠을 끙끙대던 날 가운데, 느닷없이 만난 하루키의 위로. 물론 소설의 한 구절로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무척이나 '소설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의 뒤틀림을 마주할 때마다 저 구절을 떠올린다. 인생을 구원할 한 마디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도, 심지어 나 조차도 사랑할 수 없을지 모르는 나의 뒤틀림. 그러나 지우거나 고칠 수 없는 나의 일부. 어떤 날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이 뒤틀림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그 근원을 파헤치지만, 근원을 안다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첫째, 상대를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할 것. 그리고 자기 자신도 다른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 둘째, 정직할 것.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마음에 불편하다고 해서 적당히 얼버무리지 말 것. 그런 것만 명심하면 돼.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아직도 나는 나의 뒤틀림을 마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이 작아질 때마다 주문을 되뇐다. '싫다면 싫어하라지.' 하고. 그의 취향, 세상의 취향에 나를 억지로 맞추지 않는 연습이다. '억지로 고치려다가 다른 부분마저 이상해져 버리는' 것이야 말로 가장 최악의 경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말로 가닿을 수 없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