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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차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

Band Soran & Cafe Valor. In 인천

by 보람

16. 05. 20. Fri.


월 초부터 고대하던 공연을 보기 위해 금요일 연차를 냈다. 월요일과 금요일 연차는 쓸 때마다 매우 소심해지긴 하지만, 이번엔 다른 때보다는 조금 더 과감하게 냈다. 요 근래 일에 대한 고민이 부쩍 늘었고, 스트레스도 많아져 심신이 지쳐있었던 탓도 있었기에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써야만 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심히 한 밴드의 음악을 듣다, 어느 한 곡에 말 그대로 꽂히게 된 것이다. 반복하여 듣게 되는 그 한 곡을 직접 듣고 싶단 마음이 커졌고, 급기야 폭풍 검색과 동시에 예매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해버렸다. 스트레스로 인해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우연히 접한 한 음악의 노래 가사가 내 마음 한구석에 무척 크게 와 닿은 탓이다. 그렇게 모처럼 만의 연차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밴드 소란의 넌 행복해, 바로 이 한 곡이 그렇게나 직접 듣고 싶었나 보다 : )




소란(Soran) - 넌 행복해



너는 행복해?
마치 아무런 기억도 아무 걱정도 없는 것처럼
건강하고 웃고

벌써 자겠지?
마치 우리의 기억이 네겐 아무 의미 없는 듯이
후회하고 널 걱정하며 잠 못 드는 나와는 달리

넌 충분히 그럴 거잖아 나 없이도 살만하잖아
원래 미련하고 바보 같은 성격이라서
안타깝게도 난 못 그래

정말 행복해?
우리 함께 했던 많은 날들이 거짓말처럼
넌 충분히 그럴 거잖아 나 없이도 살만하잖아
원래 미련하고 바보 같은 성격이라서
아직까지도 난 못 그래

넌 뭐가 그렇게 괜찮아 내가 이렇게나 아프잖아
나도 뭐가 뭔지 모든 것이 엉망이어서
이렇게 혼자 묻는 거야
넌 충분히 그럴 거잖아 나 없이도 살만하잖아

너는 행복해.
나를 좋아했던 일도 사랑한 적도 없는 것처럼
건강하고 웃고.






그리워할 연인이 없는 솔로 처지에(...) 어느 누구의 행복을 그토록 바라고 싶었기에 이 한 곡에 매료되었을까. 지나간 연인 생각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님 보컬의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던 걸까. 무튼 우연히 접한 이 곡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연차를 내고, 티켓을 예매하고 인천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10대 때도 안 해본 일명 덕질(?)의 성향이 나에게도 있었나... 새삼 놀라웠다. 무언가에 빠져 일사천리로 예매까지 마쳐버린 내 추진력에도 어이가 없어 혼자 웃고 말았다.


밴드 소란(SORAN) 공연 팜플렛과 티켓~



인천은 인천 공항에 갈 때 말고는 가본 적이 없는 동네다. 그렇지만 새삼 참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이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문화 공연의 혜택을 주는 곳이라니. 내가 듣고 싶던 바로 그 곡을 무려 2만 원이라는 비용으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애정이 샘솟았나 보다.


인천 종합 문화예술회관에서는 밴드데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밴드들을 초청하여 공연하고 있었다. 그중 17번째 초청 밴드인, 소란 - 그들을 부담 없이 처음 만날 수 있게 된 건 무척 행운이었다. 사실 엄청 비싼 공연이었다면, 이렇게 연차를 쓰고 인천을 오기까지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합리적인 티켓 비용에 더욱 고마움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밴드, BAND DAY- 공연 시작전 무대 모습


공연장 내에선 모든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요즘 같이 SNS에서의 소통이 활발한 시대에 촬영이 어렵다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공연장 안에서의 핸드폰 불빛은 무대 위의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당연히 금지되는 게 맞다.


이 날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 나도 이 한 장의 기념사진을 촬영해두긴 했지만, 공연이 시작된 후엔 절대 촬영하지 않았고,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보안상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촬영을 불허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렇게 어두운 실내 공연장에선 단 한 명의 핸드폰 불빛조차도 공연의 몰입을 크게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객석 앞자리의 밴드 열성 팬분들이 간혹 핸드폰을 꺼내셔서 몇 번 몰입에 방해되긴 했으나, 그래도 다행히 내가 푹 빠져버린 그 한 곡은 눈을 감고 차분하게 끝까지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역시나- 직접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공연 내내 수십 번. 한 곡을 통해 알게 된 밴드이지만,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접했던 발라드 한 곡뿐만 아니라, 그 외의 밴드 특유의 활기찬 다른 곡들 또한 내 마음을 붕붕- 뜨게 해주었다. 또한 밴드 보컬 분의 입담이 훌륭하여, 공연 중간중간의 한마디, 한마디로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기타, 드럼, 키보드의 다른 멤버분들의 소소한 입담도 즐거웠으며, 공연은 내내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갔다. 소란의 음악은 훌륭했고, 내 하루는 이들 덕분에 행복했다.








공장들 사이에 위치한, 카페 겸 스튜디오 Valor




연차라는 하루의 휴식은 음악을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또 다른 특별한 장소를 알게 해주었다. 인천에서의 밴드 공연 시작 시간은 저녁 8시였기 때문에, 이보다 일찍 도착하여 인천을 조금 둘러보기로 계획하였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인천 공단 내에 위치한 한 카페, Valor라는 곳이다.


이 곳을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다. 역시 인천에 공연만 보러 가는 건 아쉬웠던지라, 인천에서 가볼만한 곳을 검색하던 중 이 카페를 알게 되었다. 인천에도 예쁜 카페는 참 많다. 하지만 내가 이 곳을 가기로 결정한 건, 한 영화 속의 배경이 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15년도에 개봉하였고, 영화 속 배경과 독특한 스토리가 인상 깊어 두 번이나 보았던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배경이 된 카페. 영화 속 여주인공 한효주가 일했던 마마 스튜디오의 배경이 된 장소가 바로 이 곳이었다.


내부 입구 쪽에 위치한 계단에 올라 찍은, 카페 Valor 의 전경


공단 내에 위치한 카페로, 말 그대로 공장들 사이에 위치해 있어 직접 들어가 보기 전까진 이 곳에 정말 카페가 있긴 한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 배경- 마마 스튜디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영화 속의 그 장소가 맞긴 맞구나 싶었다.






카페 내부는 곳곳이 스튜디오였다. 실제로 촬영 허가를 받고, 화보 등 여러 가지를 사진 촬영하는 곳이기도 했다. 내부의 인테리어 가구들 또한 모두 판매용으로 비치해둔 것이기 때문에, 세부 촬영은 금지되며 카페 내부에서 DSLR 카메라를 사용하여 촬영할 시에는 반드시 사전 허가를 받고 촬영해야만 한다. 단, 휴대폰 카메라 촬영은 가능하다.



카페 이용시 주의사항 및 이용 가능 시간~





영화 속에서 보았던 엔틱한 분위기의 장소에 직접 와보니,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여주인공 이수 생각이 났다. 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겉모습이 달라지는 남자를 사랑하는 일이란 어떤 마음 일까, 아무리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내가 영화 속 이수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들었던 생각들이 하나 둘 씩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가 연인을 고르는 수많은 기준 중에 외모는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할까. 정말로 외모는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우리는, 아니 나는 온전히 내면의 모습만 보고 사랑할 수 있을까... 많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물음의 답은 없었다. 단지, 이전에도 그랬었고, 앞으로도 마음을 최우선으로 하여 마음이 이끄는 대로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을 뿐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은 이성보단,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더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편안한 음악과 새로운 장소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은 충분한 휴식이 된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충분한 휴식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하루이다. 카페 Valor에서 멍하니 앉아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3-4시간은 너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분위기에 취해 여유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다음번엔 친구들과 꼭 함께 와야겠다. 이런 곳을 혼자만 즐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란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도 하루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인천에서 만난 밴드 소란과 카페 Valor 덕분에 무척 기억에 남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고마웠어. 안녕,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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