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하나라..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한 건 작년 12월부터입니다.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교사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부터입니다. 물론 지금의 직업이 정년이 보장되어 있고, 소득도 안정적이며, 사회적 위신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청소년 시기에 크게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직업 중 교사만 가능하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이유를 늘어놓는다면 서울부터 부산까지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이 일을 지속하기 힘든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감정소모가 심하다는 점입니다. 모든 직장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감정이 소모된다는 것은 잘 압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동료들, 좋지 않은 작업환경, 낮은 연봉 등 모두가 다른 모양의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아픔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에게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학생, 학부모와 소통하며 감정소모가 크지 않을 수 있으나, 저는 감정소모가 많이 큰 편입니다.
저는 태어나길 내성적으로 태어났습니다. MBTI로는 대문자 I입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먼저 말 걸어주는 친구들과 친해졌고, 불만이 있어도 담아두고 한 번에 터트렸습니다. 남의 일에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화도 잘 안나는 편이라 조용하고 많이 차분한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학교는 어떤가요?전쟁터 그 자체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살아남기에는 거칠고 혹독한 환경입니다. 마치 여자친구 따라서 소품샵에 들어온 남자친구처럼 많은 상황들이 불편하고,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학교는 여러 학생들이 존재합니다. 엄청나게 활발한 학생,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학생, 거칠게 행동하는 학생, 우울함이 심한 학생 등.. 참 다양한 색깔들이 섞이고 공존하는 곳인 학교는 하나의 팔레트입니다. 이런 공간에서 교사는 신중하게 모든 색깔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섞이지 못하는 색깔은 섞일 기회를 마련해 주고, 너무 눈에 띄는 색깔은 채도와 명도를 낮추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색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게 교사의 역할입니다.
학생들끼리 조화시키는 게 물감에 다른 색을 섞거나 물을 타는 일만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로는 많은 상담과 훈계가 필요합니다. 작년에 우울증이 심한 아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상담을 포함하면 이 학생과는 30번 이상 상담을 하였습니다. 학생이 지각을 하거나 학교를 빠지는 이상행동을 보이면 부모님은 이런 행동에만 주목합니다. 그래서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설명하고, 학생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고충을 토로하시거나 예민해지시곤 합니다.
얼마나 더 이해를 해줘야 되나?
꼴 보기도 싫다. 집에서 내쫓아 버리고 싶다.
선생님이 더 강하게 얘기해주셔야 한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학생의 다친 마음을 감싸안는 일은 교사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정말 힘들고 제 마음도 다치는 일입니다. 일례로 학생의 문제행동 때문에 전화를 걸면 한숨을 푹 내쉬며,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교에서 그만 전화가 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들을 들으면 참 속상하고, 전화 걸기가 두렵기도 합니다. 얼굴 한번 본적 없었던 사이가 학생을 매개로 하여 서로를 미워하거나 싫어하게 되는 관계가 참 속상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잔소리하기, 태도 불량한 학생 훈계하기, 학생들 간의 분쟁해결 등등.. 매일이 전쟁터인 이곳은 마음이 하나이며, 충전 속도도 느린 저에게는 맞지 않는 곳일지 모릅니다. 마음이 닳고, 닳았던 재작년에는 교사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내 생각과 경험을 여러 사람에게 살아있게 숨 쉬게 만드는 작가라는 직업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책을 출간하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고, 강연도 다닌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브런치에 글쓰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전 괜찮지 않습니다. 마음이 다 충전되어서 교직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력이 늘면서 마음을 천천히 닳게 하는 법을 배웠기에 아직까지 전원이 꺼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마음이 다 닳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교사로 남아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전 글을 쓰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