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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09화

웃기지 마!

아재개그

by 째비의 교사일기

이제 연차가 쌓이다 보니 아이들과 눈도 잘 못 마주치던 저는 어디 가고 농담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이 싸늘했던 개그 몇 개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주로 학생들의 이름을 활용한 개그를 좋아하는데, '주아'라는 학생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퀴즈를 냈습니다.


'주아'가 돈이 많으면?


잠시 고민해 보실 바랍니다.


정답은 부르주아입니다! 죄송합니다.


두 번째 퀴즈는 '예루'라는 학생을 가지고 했습니다.


'예루'가 사고 싶은 물건을 보면 하는 말은?


잠시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정답은 예루살렘입니다. 감사합니다. 구독만 취소하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재개그는 이득을 취할 수밖에 없는 궁극의 필살기입니다.

첫째로, 아이들이 웃지 않아도 이득입니다. 아이들이 정색하며 질색팔색하는 그 모습이 제게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이 웃으면 개이득입니다. 아이들을 웃긴 저도 기분 좋고, 아이들도 한바탕 웃을 일이 생겼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개그를 좋아하다 보니 학생이 되려 저에게 개그를 선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바람이 가장 귀엽게 부는 곳은? 분당..


그걸 듣는 순간 저는 제 귀를 도려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개그에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남에게는 엄격한 내로남불형 인간입니다. 그 학생에게는 한번 더 아재개그를 치면 감점을 하겠다는 농담 어린 협박 후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분당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 수업 중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평소에 아재개그를 좋아하기에 편안한 분위기에서는 쉴 새 없이 내뱉지만, 딱딱하거나 어색한 분위기에서는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사가 된 지 1-2년 차 때는 제 실력발휘를 못했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레 나오는 것 보니까 저도 교단에 서는 게 많이 자연스러워진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재개그가 쉴 새 없이 나오고 있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학생들이 저를 좋아해 주고 저 역시 학생들에게 정이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꾸며낸 나의 모습이 아닌 진실된 모습으로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교직생활 중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안 웃던 난 상관없다! 나는 무반응인 너희들이 좋단다! 그리고 내 수업에서는 나만 아재개그를 할 수 있단다. 나말고는 다 웃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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