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나도 신유빈
저는 탁구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탁구채를 놓고 산 세월은 없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저는 탁구부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탁구부만 학교밖 탁구장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애들은 좁디좁은 농구장에서 바람 빠진 공을 튀기며 부러운 눈으로 우릴 바라볼 때, 그들을 바라보며 탁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하굣길보다 더 신이 났습니다.
부산 부곡에 위치한 탁구장은 우리 동아리 선생님이 오랜 시간 레슨을 받으신 세월 가득한 곳입니다. 쾌쾌한 지하 냄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탁구대가 5-6개 정도 있는 작은 탁구장에 도착합니다. 탁구부는 20명 가까이 되기에 탁구대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탁구대를 미리 맡아놓는 문화가 생겼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오기 전 미리 자리를 맡아두었는데, 저랑 친하지도 않은 아이가 와서는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비켜주면 되는데 자존심이라는 마음속 불꽃은 제 다리를 떼어놀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큰 싸움이 되었고 제 왼쪽 눈 옆에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큰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부모님은 그 흉터만 보면 가슴이 아프신지 탁구의 `탁`자도 꺼내지 말라하시지만.. 전 그래도 탁구가 좋습니다. 고등학교 가서도 체육시간만 되면 탁구를 쳤고, 대학교에서는 동기들과 탁구로 아이스크림 내기를 했습니다. 나름 탁구 친 경력도 있고 열심히 쳤기에 일반인치고는 잘 치는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탁구부심을 가지고 저는 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는 저보다 더한 야매고수가 포진해 있었고.. 저는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체육 수행평가 영역에 탁구가 추가되면서 저의 입지는 높아졌습니다. 점심시간마다 우리 반 학생과 탁구를 쳤고, 그걸 본 탁구 잘 치는 다른 학생도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점심시간마다 탁구를 치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도덕선생님인 만큼 규칙도 제정하였습니다.
첫째, 욕설 사용 시 1일 퇴출.
둘째, 과한 도발과 소리 지르는 행위 금지.
셋째, 탁구대 중 하나는 선생님이 쓰기
(저의 특권입니다. 중학교 때처럼 탁구대 없어서 못 치던 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쓰는 탁구대는 왕을 이겨라처럼 저한테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연전연승을 이어가며 실력도 크게 늘었습니다. 실력이 늘어 자신감이 가득 찼기에 저를 이기셨던 야매고수 선생님들께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1번 고수 : 요리조리 회전 고수 교감선생님
2번 고수 : 군대 짬탁구 사회 선생님
3번 고수 : 탁구는 예술이다 미술 선생님
4번 고수 : 연체동물 체육선생님
(드라이브 넣을 때 허리를 엄청 꺾으심)
모두 박살을 내고 당당히 학교 1등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비상사태가 생겼습니다. 우리 반 학생이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1대 4이랬던 압도적인 스코어는 11대 6, 11대 8까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지는 날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겨울방학 동안 특훈한 학생은 이제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1등 자리를 내어주고, 저는 그보다 못한 학생과 2등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제는 제가 이기고, 오늘은 제가 졌는데 참 원통합니다. 제가 지니 얼마나 저를 놀리던지.. 다음 주에는 다시 교사로서 명예를 회복하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