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가진 힘
저번달에 가장 잘한 일은 교사일기를 연재한 일입니다. 교사 생활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써 내려가다 보니, 마음속 상처도 같이 씻겨 내려갔습니다. 글이 주는 힘을 알았다면 진작에 글을 적을걸 그랬습니다.
옛날부터 글이 마음을 치유한다, 차분하게 만든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습니다. 제게 글을 써본 경험이라 해봤자 애인한테 편지를 끄적여본 정도였습니다. 애인에게 적는 편지는 고뇌의 연속이기에 치유보다는 고통에 가까웠습니다.
작년부터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전 투자에 관심이 많았기에 투자 관련 글로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간 읽었던 좋은 책들을 정리하고 요약해보고 싶었는데, 연재를 하면서
그 일들을 해보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피터 린치, 필립 피셔 등의 전설적인 투자의 서적들을 보기 좋게 챕터별로 요약하고, 이해를 도울 예시들을 추가했습니다. 피곤한지 모르고 방학 내내 이 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똑같은 책을 3-4번 더 읽고, 더 쉽고 와닿는 예시들을 궁리하고, 가독성 있도록 글을 정리하면 하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머리로 대충 이해하고 있던 투자 서적들은 글로 정리하고 기록하니 살아 숨 쉬게 되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그리고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글이 탄생하는 것은 우리가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음식물은 치아를 통해 잘게 부서지고, 위산을 통해서 분해되고, 장을 거치면서 더 잘게 부서지는 과정을 겪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적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습득하고, 그것을 꼭꼭 씹어서 나의 것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도 소화시킬 수 있도록 더 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 나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글로 탄생하게 됩니다. 글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죽어있던 지식은 살아 숨 쉬게 됩니다. 그것이 글쓰기가 주는 힘입니다.
글이 주는 대단한 힘은 또 있습니다.
저번 달부터 교사생활하면서 경험했던 일들과 감정들을 써 내려갔습니다. 재작년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일들을 글로 적는다는 것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괜히 잊고 싶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닐까? 과연 글로 적는 게 도움이 될까?
꺼내기 두려웠던 상처를 꺼내니, 오히려 마음이 개운해지고 내가 겪었던 일들이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팠던 과거를 꺼내니, 지나쳤던 행복한 일들을 담아낼 여유가 생겼습니다. 졸업하고 나를 찾아와 준 고마운 학생들, 체육보다 내 수업이 재밌다고 해준 학생들, 학생들과 소통하며 행복했던 순간들.. 글을 적지 않았다면 속상한 일들로 가려졌을 일들이 마음 깊이 새겨졌습니다. 이 순간들은 앞으로 힘든 일들이 찾아올 때 고통을 잊고,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진통제가 되어 줄 것입니다.
글 솜씨가 뛰어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러도 좋습니다. 속상하거나 슬픈데 말할 곳이 없다면 그 상황과 내 감정을 무작정 적어보세요. 내가 글을 적고 있는 종이는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말동무가 되어 줄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다면 더더욱 글을 적어보세요. 기쁜 순간을 남긴 추억사진처럼 평생을 살게 해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글쓰기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위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글을 써보지 않는다면 평생 이 힘을 모르고 살게 될 것입니다.